왜 유승민은 ‘필패 후보’인가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2-04-14 14: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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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대구에서 내리 4선을 한 유승민 전 의원이 정계 은퇴를 고민하다가 느닷없이 아무 연고도 없는 경기도에서 도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누가 봐도 뜬금없다. 명분도 없고 개인의 탐욕일 뿐이다.


사실상의 위장전입까지 하면서 무연고지에서 출사표를 던진 것은 지방선거의 취지와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역 유권자들을 우습게 아는 행태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대선과정에서 ‘386 용퇴론’을 주장하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가 갑자기 서울시장이 되겠다고 뛰어든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마찬가지다. 인천 계양에서만 다섯 번 배지를 단데다 인천광역시장까지 지낸 인물이 느닷없이 서울시장 선거전에 뛰어든다는 자체가 황당한 일이다. 물론 명분도 없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 모두 같은 진영 내에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민주당 서울 49개 지역위원장은 전략공천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결국 비대위는 서울을 ‘전략선거구’로 정하고 말았다. 송영길 전 대표는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의 딱한 처지로 내몰리고 말았다.


그나마 이준석 대표의 보호 아래 있는 유승민 전 의원은 송영길 전 대표보다는 나은 처지다. 하지만 어쩌면 그는 송영길 전 대표보다 더욱 참혹한 처지로 내몰릴지도 모른다.


국민의힘 공관위가 일단 유승민 전 의원에게 김은혜 의원과 경선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었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참담하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성인 814명을 대상으로 한 경기지사 관련 여론조사에서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이 27.6%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이어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표 19.3%, 유승민 전 의원 15.9%, 염태영 전 수원시장 10.3%, 안민석 의원 9.0%, 조정식 의원 2.5% 등의 순이었다. 부동층은 9.7%였다.


유 의원은 경선 경쟁자인 김은혜 의원에게 큰 격차로 밀렸다. 두 후보 간 지지율 격차는 오차범위(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 ±3.4%p)를 벗어나 무려 11.7%p에 달했다.


대선에 두 번이나 출마했던 사람이 자신의 인지도만 믿고 무작정 무연고 지역에 명분 없이 뛰어들었다가 초선 의원에게 호되게 당하는 모양새다.


가상 양자 대결의 결과는 더욱 참혹하다.


'김동연 대 유승민' 간 가상대결에서는 김 대표 41.2%-유 전 의원 33.5%로 유 전 의원이 7,8%p 격차로 뒤졌다.


반면 '김동연 대 김은혜' 경우엔 김 대표 41.4%-김 의원 43.2%로 비록 오차범위 이내이긴 하지만 김 의원이 1.8%p 앞섰다.


김 대표의 지지율은 누구와 붙더라도 변동이 거의 없지만, 야권주자로 유승민 전 의원이 나설 때와 김은혜 의원이 나설 때는 무려 10% 가까운 차이가 났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진영 내에 존재하는 비토세력이 등을 돌린 탓이다.


유승민 전 의원은 상대 정당과 싸우기보다는 주로 같은 진영 내에 있는 사람들을 짓밟는 형태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하는 정치를 추진해 왔다. 새누리당 시절엔 박근혜 탄핵에 앞장섰고, 바른미래당 시절엔 손학규 탄핵의 깃발을 들었다. 박근혜 지지자들과 손학규 지지자들이 비록 국민의힘을 지지하지만 죽어도 유승민만큼은 찍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이런 연유다.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그런 현상이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 지지층에선 80% 가까이가 야권 후보로 누가 나오든 김동연 대표에게 투표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반면 야권 지지층에서는 김은혜 의원이 출마하면 85.3%가 지지하겠다고 밝혔으나 유승민 전 의원이 출마하면 고작 62.8%만 지지하겠다고 했다. 유승민 전 의원이 야당 후보가 되면 야권 지지층 가운데 무려 20% 이상이 투표를 포기하겠다고 밝힌 셈이다.(본문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박근혜-손학규 지지층의 반감으로 유승민은 ‘필패 후보’라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긴 했으나 이를 입증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승민 전 의원은 어떤 선택을 할까?


명분 없이 개인적 욕심으로 경기도지사 선거에 뛰어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후보직에서 물러날지. 아니면 송영길 전 대표처럼 미련하게 “경선하자”라며 고집을 피울지 귀추가 주목된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 대가는 홀로 감당해야 한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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