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법학을 처음 배우게 되면 딱딱한 건조체의 법조문이 장벽으로 다가온다. 사람의 삶과 떼어놓으려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 법이지만 법조문은 도통 와 닿지 않는다.
헌법을 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양심의 자유와 언론·출판의 자유 등을 가진다고 열거되어 있지만 초등교 사회책에 있는 내용과 그리 달라보이지도 않으니 그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는가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헌법이 보장하고 지켜야 할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아닌 사회적 약자로 해석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치적 또는 경제적 권력을 가진 주류세력이 아닌 비주류세력이 차별화된 이념과 사상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고 이로 인해 탄압받을 수 없다고 해석한다면, 경제적 수단을 확보하지 못한 취약계층도 사회적 활동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학교와 도로, 교통시설 등 사회기반시설을 큰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정책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해석한다면, 자신이 반지하방에 살든, 철거대상 건물에 살든 어떤 경우이든 자연재해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고 해석한다면, 헌법의 조문은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일 집중호우 대처상황점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자연재해에 취약한 생활이 어려운 분들, 몸이 불편한 분들이 안전해야 대한민국이 안전하다"고 밝혔다.
그동안 대통령이 보인 형태와 상당히 결이 다른 발언이었다. 사실 윤대통령은 전형적인 강자와의 동행을 보였다는 지적이 상당해 왔다. 법인세 인하, 종합부동산세 중과 폐지, 상장주식 양도세 완화 등은 주류세력의 ‘낙수효과론’과 맞물려 여론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모양새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낙수효과론은 낙수에 쓰여야 할 자원이 새로운 사업 발굴과 투자 그리고 로비 자금 등으로 사용되기에 그 효용성이 없어진 지 오래인 이론이다.
최근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미국에 38조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하고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생큐 토니”라는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낙수는 밑으로 떨어지지 않고 흘러가버린다.
기본권을 실현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계층은 헌법이 알려주고 있는 사회적 약자 특히 생활고를 항상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취약계층이다. 사회적 강자는 기본권을 말할 필요도 없고 주장할 이유도 없다. 기본권은 사회적 차별과 배제를 당함에 있어서 이 사회가 최소한도로 지켜야 할 최후저지선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수도권 폭우 사태는 정부가 지향해야 할 역할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2011년 당시 오세훈 시장이 수립한 '빗물을 나르는 고속도로'로 불리는 대심도 빗물배수터널 건설 계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박원순 전 시장과 이를 방관한 시의회 민주당의 실책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들이 얼마나 반성하고 있는지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했다. 사고 현장에 달려간 대통령을 조롱할 만큼 그들이 당당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헌법 제34조에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정부의 공공서비스를 향유해야 할 추상적인 국민을 장애인, 주거취약계층,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등 사회적 약자로 해석해 보자.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만큼 대한민국이 안전하다’는 윤대통령의 발언이 질량감 있게 다가온다. 강자와의 동행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극복할 수 있는 값비싼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