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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병의 수는 자그마치 조선군의 10배도 넘는 3만여 명. 권율 장군을 중심으로 조선군은 똘똘 뭉쳐 왜군을 크게 무찔렀다. 수훈갑 권율 장군 못지않게 행주대첩 승전의 중심엔 행주치마에 돌을 져 날랐던 어린 아녀자들까지 끼어 있다. 당시 부녀자들도 긴 치마를 잘라 짧게 만들어 입고 돌을 날라 공을 세웠다고 해서 ‘행주치마’라는 명명했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려진 역사다.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침공한 러시아을 막아낸 우크라이나의 선전에 유럽은 물론, 온나라 자유세계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성경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했다. 베트남 전쟁은 베트남인의 전쟁이 아니라 ‘베트남에서 미국의 전쟁’이 돼버렸다. 미국이 지원하는 정부가 스스로 지킬 의지와 능력이 없었기에 미국의 어떠한 노력도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베트남의 교훈’과는 엄연한 차이다.
첨단화력을 갖춘 현대전에서도 결국 전쟁을 수행하는 자국 국민의 투지와 정신력에서 승패 갈리는 결과를 앞서 왕왕 봐 왔다. 고대 로마의 패망도 용병에 의존했던 결과다. 나라를 지키기 위한 그 나라 국민이 보여준 총화단결의 힘, 불굴의 투지와 정신력에 높은 가치를 둘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틀어 영속할 수 있었던 나라, 나라를 지켜낸 역사를 지닌 나라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그 피끓는 대열에 ‘행주치마’의 역사가 엄존한다.
위기의 대응력과 생활의 억척스러움으로 말하면 세계 어딜 내놔도 빠지지 않는 한국 여성의 여성상(象), 이른바 ‘줌마정신’도 ‘행주치마’의 역사와 궤를 같이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줌마’는 아줌마의 준말로 요즘 매스컴에서 흔히 쓰이는 통용어다. 경우에 따라 경모(輕侮)적인 의미가 있을 수 있고, 의외의 반발을 부를 수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우리사회 중년여성의 생활자세나 정신세계와 무관하지 않다.
사실 한국 여성스포츠 분야만 하더라도 굵직한 세계대회에서 금자탑을 쌓으며 세계를 호령하던 때가 있었다. 남성스포츠계가 깊은 침체기에서 벗어나질 못할 때일수록, 국민의 마음을 한데 모으고 국가의 자존심을 세운 적이 많았다. '새마을 시대'인 70년대엔 이에리사, 정현숙을 앞세운 여자탁구의 사라예보 세계선수권 제패(73년)가 그랬다. 탁구라켓을 빗대 ‘(밥)주걱’과 행주치마 정신의 쾌거로 국민모두가 기쁨을 나눴다. 산업화 시대 일손을 함께 거들던 청춘들의 노고에도 공돌이 공순이로 하대했던 시절이 아닌가. 같은 또래 젊음의 세계제패는 그들에게도 새로운 용기와 희망이었다.
80,90년대 경제성장기 한복판에서 급소를 얻어맞은 IMF(국제구제금융) 슬럼프에서도 돌파구는 있었다. 98년 혜성처럼 등장한 박세리. 그는 여자프로골프(LPGA) 데뷔 첫해에 US오픈 등 메이저대회 2개를 포함, 그해 무더운 여름까지 4개 대회서 우승해 전 세계가 경악했다.
이를 계기로 국민의 마음을 한데 모아 금융위기로부터 국가 재활의 전기를 마련한 것 역시 행주치마 정신이다.
박세리가 맨발 투혼으로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박세리같은 선수가 되기 위해 골퍼로 입문한 1986∼88년생들의 ‘박세리 키즈’들이 오늘날 각종 국제대회를 움켜쥐고 있다.
이런 대한민국에 '김연아 열풍'이 분 때도 있었다. 2010밴쿠버동계올림픽 금메달 이후, 경쟁에서 이탈한 김연아가 수개월의 준비로 2013년 3월 세계 정상에 오르자 그의 숨은 노력과 타고난 근성을 한국여성상에 비유하곤 했다.
하지만 요즘 한국스포츠계에서 여자스포츠를 화제에 올리기가 매우 불편한 모습이다. ‘韓여자야구, 캐나다에 콜드게임 패… WBSC 월드컵 5전 전패’, ‘여자월드컵에서 16강 탈락’ 더구나 세계최강을 군림하던 양궁에서 ‘44년 만에 세계선수권 노메달...’로 돌아왔다. 스포츠도 과학화, 첨단화되어가는 세상에 한국여자스포츠 약체 원인을 MZ세대의 특성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
물론, 목표의식에 대한 의지와 투지 같은 정신력도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게 스포츠다. 다만 즐기는 스포츠가 대중화를 이루고, 저변 확대를 통한 참여 속에서 두터운 ‘국대(국가대표선수)’층이 생겨나는 것이 보다 자연발생적이며 스포츠 선진화의 올바른 길이지 않을까. 논어에도 “도(道)를 아는 것은 도(道)를 좋아하는 것보다 못하고, 도(道)를 좋아하는 것은 도(道)를 즐기는 것보다 못하다”고 했다. 스포츠도 같은 이치다.
때마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한국후보에 금메달리스트 박인비를 한국 후보로 선정했다. 앞서 문화체육부 차관에 스포츠인 장미란이 얼마 전 부임해 활동 중이다. 한국스포츠, 특히 한국여자스포츠 부흥에 여성스포츠인 출신의 연이은 발탁은 국내외적으로도 기대와 관심이 지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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