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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정규 교수 |
우리의 20세기 시작은 고난과 비극의 역사였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일, 우라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국권을 상실한 후, 35년간의 일제강점기의 ‘식민 트라우마’가 있었다. 이후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였으나, ‘식민 트라우마’를 치유할 시간도 없이 우리를 둘러싼 열강의 이해관계 속에서 3.8선을 경계로 각각 미·소 두 열강이 주둔하며 ‘분단 트라우마’는 시작된다. 결국 1948년 남과 북은 각각 대한민국 정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면서 갈라지게 된다. 그로부터 몇 년 후 1950년 6월 25일, 북한은 민족적 대의라는 가짜 명분으로 소위 남한을 해방하고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미명하에 남침을 감행한다. 이념의 차이로 민족 간 전쟁의 비극을 통해 같은 형제끼리 서로의 얼굴에 총을 겨누며 적이 된다. 6.25 전쟁은 남북한 200만명 이상의 안타까운 인명피해를 낳았다.
이후 계속되는 좌우 이념의 대결은 이제 ‘정치적 편향성’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국민들을 갈등, 적대적 대결, 불신, 증오 속으로 내몰고 있다.
최근 한 언론보도에 의하면, 정치적 성향과 유권자들의 인관관계에 미치는 영향의 조사에서, 정치적 성향이 다르면 동료나 이웃, 친구가 되는 것 자체를 꺼린다고 한다. 더 나아가 지지하는 정당이 다른 이성과 결혼할 수 없다는 유권자들이 절반을 넘었다고 할 만큼 그 정도가 심각하다. “길은 잃어도 사람은 잃지 마라.”고 했는데, 정치적 다름으로 사람마저 저버리는 세상이 온 것 같아 안타깝다.
이렇게 ‘정치적 다름’을 적대시하고 증오 하는 것은 우리가 겪은 ‘식민 트라우마’와 ‘분단 트라우마’가 제대로 치유되지 않은 체, 좌우 이념의 대결이 ‘적대적 정치적 편향성’이라는 또 다른 ‘트라우마’를 키운 듯하다. 여기에는 국민들을 갈라 쳐 득표하려는 정치권의 영향이 가장 크다. 갈등을 조정 중재해야할 정치권이 지지층만 바라보는 분열의 정치로 대한민국을 병들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느린 것 같지만 가장 빠른 ‘트라우마’ 치유는 한 명 한 명의 우리가 시작하는 것이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다름’은 나와 너 서로를 인정해주는 것이고, ‘틀림’은 나만 옳고 너는 옳지 않다는 것이다. ‘틀림’은 나만 좋은 사람이고 너는 나쁜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고 배려하는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면 대화가 열리고 다르기에 지혜가 열린다. ‘다름’을 인정하는 대화는 ‘소통’이다. 통즉불통(通則不痛)이다. 소통하면 고통이 없어진다. ’다름’을 인정하는 소통은 치유이고 어울림이고 통합이다. 우리 모두는 동시대(同時代)를 함께 살아 가고 있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이다. 나부터 시작해보자.
정치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담을 쌓으면 분열이고 퇴보이고, 정치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담을 허물면 통합이고 미래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 정치는 상호간의 ‘다름’이 ‘틀림’을 넘어 우리 편은 모두 옳고 좋으며, 상대방은 모두 옳지 않고 나쁘다는 식이다. 한마디로 내로남불이다. 갈등을 해결하는 정치가 아니라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대결이다.
전쟁과 선거는 모두 치열하게 싸운다. 그러나 전쟁은 트라우마와 분열을 낳지만, 선거는 치유와 통합의 기능이 있어야 한다. 이념ㆍ지역ㆍ세대ㆍ성 갈등과 분열, 증오를 모두 용광로에 넣어 치유와 통합으로 새출발하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특히 이번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이하 ’제20대 대선‘) 과정은 극도의 갈등과 분열이 표출되었기에 더욱 절실하다.
‘제20대 대선’기간은 유한하지만, 대한민국의 운명은 무한하다. ‘제20대 대선’은 3월 9일에 끝나지만 우리의 대한민국은 계속 되어야 한다. 이것이 제20대 대선 결과보다 대선 이후가 더 중요한 이유이다.
‘제20대 대선’ 이후 국민 치유와 국민 통합이 중요하다. 그래야 진영의 승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승리가 된다. 국민치유ㆍ국민통합 위에서 국민행복과 대한민국의 더 좋은 미래가 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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