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입맛 맞추려는 ‘기망 정보’는 최악의 국기 문란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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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식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 소장
“정보(情報)는 ‘불확실성을 감소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되며, ‘당면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단서’가 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이는 정보의 기능과 가치를 설명해 주는 정보론(情報論)이자 ‘제대로 된 정보 없이 중대사를 판단하거나 예고 정보(豫告情報)를 무시하고 독선하는 일의 위험천만’함을 경고하는 사회 일반의 경험론(經驗論)이기도 하다.
‘정보력이 곧 국력’이라거나 ‘국가안보는 총구가 아닌 정보에서 나온다’,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재물을 많이 소유한 자보다 정보를 많이 보유한 자가 지배세력이 된다’는 등의 말은 개인의 사적(私的) 활동은 물론 기업의 경영전략에서부터 나라의 정치·경제·외교·국방·과학 등에 이르기까지 ‘대상(對象)과 관련된 정보를 얼마만큼 정확성과 완전성, 적시성 있게 획득하느냐에 따라 목표하는 바 성취도가 달라진다’는 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격언들이다.
이렇듯 정보를 외면하고는 하루도 살기 어려운 것이 오늘의 ‘정보화 세상(情報戰)’이다. 특히 국가의 안위나 민생과 직결되는 ‘국정 정보(國政情報, 국가 운영에 필요한 정보)’의 경우 제때 수집되지 않거나 선택·평가·분석·종합·해석하여 보고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부실이나 왜곡이 발생하면 한순간에 나라가 혼란에 빠져들게 됨을 우리는 지금 나라 안팎에서 목도하고 있다. 즉 ‘정보 부재’, ‘정보 경시’, ‘정보 왜곡’은 정보화시대를 맞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핵심 과제라 하겠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 무장 집단의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적 대규모 테러 공격 성공은 그 유명한 이스라엘 양대 정보기관인 신베트(국내)와 모사드(해외), 방위군(IDF) 누구도 그러하리라는 정보를 입수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즉 ‘정보 부재(情報不在)’가 지금의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을 초래한 근인(近因)이 되었다는 것 아닌가! 한편 2001년 미국의 9·11테러 대참사의 경우에도 FBI가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이 비행기로 건물에 테러를 가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해 사건 발생 한달 전인 8월에 보고했지만 부시 행정부가 ‘그럴수 있겠느냐’, ‘실현가능성에 의문’이라며 적극적인 대응책을 강구하지 않은 ‘정보 경시(情報輕視)’가 참화를 불렀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23년 11월 유례없는 ‘정보 왜곡(情報歪曲)’이 발생했다.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 투표(발표) 하루 전까지 윤석열 대통령에게 ‘49대 51 박빙’, ‘2차 투표에서 역전해 유치 가능’이라 보고되었으나, 결과는 1차 투표에서 사우디(리야드)에 한국(부산)이 119대 29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참패했다. 119대 29라는 ‘게임도 안되는 흐름’을 두고 정보관계자들은 뭘 보았길래 ‘박빙’이니 ‘역전 가능’으로 읽은 것인지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혹 정보·외교라인에서 허깨비를 보았거나 비몽사몽 상태에서 나온 분석이 아니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이는 앞에서 열거한 ‘하마스의 기습 공격 시 정보 부재’나 ‘9.11테러때 예고된 테러리스트들의 동향을 가볍게 여긴 정보 경시’가 낳은 재난 못지않은 국가적 혼돈을 야기한 ‘망신 사례’로 우리 정보학(情報學)에 길이 전해지리라 본다.
사후담(事後談)으로, ‘1차 투표에서 사우디가 무난히 과반수를 얻을 것으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으나 대통령만 몰랐다’는 경천동지할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대통령실이나 관계 장관 등은 실상(實相)을 있는 그대로 보고 하고 싶었지만 대통령의 엑스포 유치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될까봐 분위기를 맞출 수 밖에 없었을 것’, ‘듣기 싫은 보고에는 짜증을 잘 내는 대통령의 확증 편향(確證偏向)이 거짓 정보를 부른 요인일 수 있다’는 등의 추론도 뒤따르고 있다.
이를 놓고 볼때 ‘엑스포 정보 실패’는 ‘정보라인의 역할 한계(정보 부재)’와 ‘정보사용자의 확증 편향(정보 편식))’ 분위기에 편승한 ‘보고자의 허위와 조작(정보 왜곡)’이 그럴듯하게 결합된 ‘정보 참사(情報慘事)’라 아니할 수 없다. 필자는 40여년 간 정보를 연구해 왔지만 동서고금 어디에서도 이렇게 허망한 엉터리 정보 분석(예측)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국정 정보 왜곡은 최악의 국기 문란 행위이다. 이런 유형의 정보 왜곡이 더 없는지 사람과 시스템에 대한 철저한 점검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없다.
문제는 앞으로가 더더욱 걱정이다. 지금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는 국제 정세와 국민 간 갈등과 분열을 심화하고 있는 정치·사회적 이슈는 무서우리만큼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대통령에게 ‘양질의 정보’가 그 어느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이에 대통령의 정보참모들에게 정중히 고(告)한다. “도끼로 내리쳐도 ‘곧게 말할 용기’ 없으면 ‘국정 정보’에서 손떼라!” 더 이상의 정보 왜곡은 정권을 위태롭게 하고 나라를 기울게 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대통령의 정보참모나 측근은 그야말로 ‘민심을 천심’으로 여기며, 대통령을 ‘민심’으로 보좌할 수 있는 ‘민심에 부합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그럼 여기에서 ‘목숨을 내놓더라도 민심은 왜곡하지 않겠다’는 용기와 각오로 임금의 잘못을 곧게 지적하여 시정하게 함으로써 백성들의 원성 해소는 물론 왕과 백성이 친화를 더 높이는 계기가 된 조선 어느 관리(官吏)의 ‘민심 정보 보고’에 얽힌 이야기를 함께 음미해 보자.
조선 19대 왕인 숙종때 홍문관 교리(정5품)직에 있던 이관명(李觀命, 1661~1733)이 암행어사가 되어 영남지방을 시찰한 뒤 돌아왔다. 숙종이 여러 고을의 실정(實情)을 묻자 곧은 성품을 지닌 이관명은 사실대로 직언(直言) 했다.
“황공하오나 한 가지만 아뢰옵나이다. 통영에 소속된 섬 하나가 있는데, 무슨 일인지 대궐의 후궁 한 분의 소유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섬 관리들의 수탈이 어찌나 심한지 백성들의 궁핍을 차마 눈으로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숙종은 손에 쥔 철여의(鐵如意)를 책상에 내리치며 “과인이 그 조그만 섬 하나를 후궁에게 준 것이 그렇게도 불찰이란 말인가!” 대성일갈(大聲一喝) 격노했다.
그러나 이관명은 조금도 굽히지 않고 다시 아뢰었다. “신은 어사로서 어명을 받들고 밖으로 나가 1년 동안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하의 지나친 행동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누구 하나 전하의 잘못을 막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러니 저를 비롯하여 이제껏 전하에게 직언하지 못한 대신들도 아울러 법으로 다스려 주시옵소서!” 숙종은 여러 신하 앞에서 창피를 당하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바로 승지(承旨)를 불러 전교(傳敎, 임금이 내리는 명령)를 받아 쓰라고 명하였다. 신하들은 이관명에게 큰 벌이 내려질 것으로 알고 숨을 죽였다.
“전(前) 어사 이관명에게 부제학(홍문관의 정삼품 당상관 벼슬)을 제수한다”. 숙종의 분부에 승지는 깜짝 놀라면서 교지를 써내려갔다. 곧 이어 숙종이 다시 명했다. “부제학 이관명에게 홍문제학(홍문관 종이품)을 제수한다”는 명이 떨어졌다. 괴이하게 여긴 것은 승지만이 아니었다. 신하들은 저마다 귀를 의심했다. *제수(除授)란 추천의 절차를 밟지 않고 임금이 직접 벼슬을 내리던 일을 말한다.
그때 숙종은 또다시 승지에게 “홍문제학 이관명에게 예조참판(종이품 벼슬로 예조판서의 다음 서열, 오늘날 차관급)을 제수한다.”는 명을 내리고 이관명을 불러들여 말했다. “경(卿)의 정보와 간언으로 이제 과인의 잘못을 깨달았소. 앞으로도 그와 같은 신념으로 짐의 잘못을 바로잡아 나라를 태평하게 하시오.”
어떻습니까? 권력자의 귀에 거슬리는 정보라 할지라도 있는 그대로 말하는 이관명의 용기도 훌륭하지만, 입맛에 맞지 않는 정보라 할지라도 충직한 신하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숙종 임금의 안목 역시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이 일화는 민간에 떠도는 야사로서 숙종 시절 당쟁은 치열했지만 정파를 떠나 ‘사회적 정의’를 지조와 행실에 담으려던 당시 사회상(社會相)을 말해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필자와 같은 소시민까지 주제넘게 어떤 사안이 작금 국론을 분열시키고 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있는지 열거하고 이러쿵 저러쿵 끼어드는 것은 문제 해결에 별 의미가 없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의 갈등과 대립이 장기화‧고착화 되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심각한 상황을 맞게 될 것이 불보듯 뻔하다는 점이며, 이러한 난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민심’과 ‘민심 정보’를 최상의 판단 근거와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임을 고언해 두고 싶다.
윤석열 대통령님! 경우에 따라 ‘숙종 때 이관명과 같은 충직한 사람’을 시정(市井)에 암행토록 파견해 보시면 어떨까요? 대통령님의 열정과 혜안에 ‘이관명의 민심 정보’가 더해지면 ‘더 큰 덕치(德治)’, ‘더 탄탄한 대한민국’이 실현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필자/김종식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한국범죄정보학회민간조사학술위원장,前경찰청치안정책평가위원,前국가기록원민간기록조사위원,한북신문논설위원,치안정보업무20년(1999’경감),경찰학개론강의10년/저서:탐정실무총람,탐정학술요론,탐정학술편람,탐정학,정보론,경찰학개론外/사회분야(치안·국민안전·탐정업 전문화 등) 600여편 칼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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