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내일이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다. 이번 추석은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제한 이후 처음 맞는 명절이다. 그 동안 못 만났던 가족들을 만나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생각만으로도 벌써부터 가슴 설레는 사람들도 많을 듯하다. 아이들은 잔치 집 분위기와 맛난 음식을, 부모님은 오랜만에 보는 자녀들과 손자들, 남편은 일을 가지 않는 연휴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가족들이 이렇게 즐거워하는 추석이, 추석을 준비하는 며느리들에게는 고난(苦難)의 시기 일 수 있다. 특히 3년 만에 찾아온 ‘사회적 거리두기 없는 명절’을 맞으면서 며느리의 스트레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2년 동안의 설ㆍ추석 연휴와 달리 사적모임 인원 제한이 없어져 며느리들은 그동안 다소 감소되었던 명절 노동이 가중될 것이 예상되면서, 이번 추석을 중추절(仲秋節)이 아닌 중노동절(重勞動節)로 받아들이고 있다.
유교 전통문화 보존에 앞장서 온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가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5일 “추석 차례상의 기본은 송편, 나물, 구이, 김치, 과일(4가지), 술이다.”라며 '차례상 표준화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명절만 되면 '명절증후군'과 '남녀차별'이라는 용어가 난무했다"며 "이번 추석 차례상 표준안 발표가 경제적 부담은 물론 남녀갈등ㆍ세대갈등을 해결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의 바람과는 달리 이것이 올해 추석 명절 현장에서 바로 실행되는 것은 공염불(空念佛)이라는 것이 며느리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며느리들 사이에 명절 기간 전후로 소화가 안 되고 목에 뭔가 걸려 있는 것처럼 막히고 가슴도 답답하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프고 또, 마음도 불안 초조하고 우울하며 잠도 잘 오지 않는 등 심리적 불안정 상태로 인하여 다양한 신체적ㆍ정신적 증상을 호소하는 며느리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증상들을 일컬어 소위(所謂) ‘며느리 명절증후군' 이라 한다.
‘며느리 명절증후군’은 핵가족 생활에 익숙한 며느리들에게 대가족 음식 준비와 제사준비, 상차리기, 설거지, 손님 접대, 시댁어른 모시기 등 평소보다 곱으로 늘어난 가사 노동과 정신적 부담으로 오는 일종의 급성 스트레스 반응이다.
또한 ‘며느리 명절증후군’은 명절에 여성은 일하고 남성은 노는 우리문화 깊숙이 자리 잡은 남성 우월주의와 가부장적 문화로 인한 우리나라 특유의 문화병이기도 하다.
명절에 여성들은 ‘차리고’, ‘치우고’, ‘닦고’, ‘쓸고’, ‘정리하고’, ‘접대하고’, ‘모시고’의 일곱 가지 고(苦)에 시달리고, 남성들은 놀이와 휴식을 하는 남성들 위주로 형성된 명절 문화에서 여성들에게 명절(名節)은 암절(暗節) 일 수 있고, 이 땅의 많은 며느리들에게 명절은 즐거운 날이라기보다는 고난(苦難)의 날 일 수 있다.
물론 요즈음 젊은 부부들은 맞벌이인 경우가 많고, 집안일도 나눠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명절의 주공간은 '시가(媤家)’이기에 명절은 시부모님들의 과거 문화로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 여기에 홈그라운드에 온 남편의 기세가 갑자기 등등(騰騰)해진다면, 불 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격이다.
며느리들도 이러한 명절의 과거 문화를 당장 없애고 명절 일들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명절 때 며느리들이 더 힘들어하는 것은 육체적 피로보다 자신의 이러한 스트레스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가족들, 특히 남편의 태도일 수 있다.
물론 남편들도 장시간 운전으로 인한 피로, 명절에 지출해야 할 경제적 부담, 고부갈등에서 아내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며느리인 아내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남편이 아내의 스트레스를 이해해주고 조그마한 일이라도 도와주고 따뜻한 손으로 어깨를 토닥거려 주며 수고했다고 말한다면, 아내의 스트레스는 봄눈 녹듯이 사라지고 아내는 ‘며느리 명절증후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렇게 하는 것이 남편들의 명절 최대의 스트레스인 아내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길이기도 하다.
며느리들이여! 어차피 맞이할 수밖에 없는 명절이라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와 밝고 즐거운 마음으로 명절을 맞이하길 바란다.
끝으로 한마디 “명절은 짧고 인생은 길다.” 올해는 더욱이 ‘짧은 추석 명절 연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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