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메오 카스텔루치의 무언극 ‘창세기’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03-04 19:5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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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혼돈’을 춤춘다 ‘창세기’는 99년 초연된 근작. 창조와 탄생의 이면에 놓인 파괴와 죽음에 주목했다. 창조의 환희를 노래하는 대신 창세기를 비관적 시각에서 해석했는데 이는 창조에는 혼돈과 죽음이 연결돼 있다는 카스텔루치의 세계관 때문이다.

“내게는 요한계시록보다 창세기가 더 큰 공포로 다가온다.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가능성들을 보노라면 극도의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창세기는 모든 상상을 초월한다. 왜냐하면 창세기는 혼돈에서 왔으며 본질이 바로 혼돈이기 때문이다. 당신과 나의 본질이 그렇듯”이라는 게 카스텔루치의 말이다.

연극은 전체 3막이다. 방사성 물질인 라듐을 발견한 퀴리 부인(태초에, 퀴리부인의 빛의 발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학살의 현장이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아우슈비츠 수용소), 그리고 인류 최초의 살인자 카인과 그 동생 아벨(카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차례로 펼쳐진다.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카스텔루치의 다른 작품처럼 논리적인 줄거리는 없다. 대신 비정상적으로 깡마른 ‘루시퍼’, 뼈가 없는 듯 움직이는 아담, 한 쪽 가슴이 없는 60대의 이브, 팔이 뒤틀린 카인 등이 등장한다.

조금 거북할 수도 있는 등장인물들인데 이 때문에 LG아트센터는 이례적으로 “어린 관객이 보기에 부적합하거나 일부 관객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경고문도 팸플릿에 넣었다.

독특한 시각처럼 연극은 각 장면이 통념과 반대되는 분위기로 연출됐다. 퀴리부인의 연구실은 고통스런 비명이 넘쳐나는 반면 아우슈비츠에는 천진난만한 여섯 아이들이 등장해 동화처럼 아름답고 고요한 수용소를 보여준다.

인류 최초의 살인을 소재로 한 3막은 고요하고도 서서히 전개된다.

제2막에 나오는 아이들 중 다섯은 카스텔루치의 자식이라고 한다. 또 로봇과 개도 무대에 오른다.

카스텔루치는 한국 관객에게 ‘작품 속 상징들과 표현법의 의미에 연연해 그것을 이해하려 매달리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관람해 달라’고 당부했다.

최준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는 “‘창세기’ 관람은 국내 관객에게는 가장 잔혹하고 그로테스크하고 충격적인 공연을 만나는 기회”라며 “이 작품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언어보다 더 강렬한 힘을 가진 비언어(무대언어)를 사용해 다른 수용과 다른 깊이를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은 휴식시간을 포함해 약 3시간.

공연시간 21일 오후 7시 30분, 22일 오후 4시. 3만∼6만원. (02)-2005-0114.
최은택 기자 volk1917@simin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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