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구(구청장 김우중)가 국내외 연수를 통한 동기부여 제도의 활성화로 근무분위기 쇄신과 경쟁력 강화를 도모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유럽 3개국 배낭여행을 다녀온 가정복지과 김찬호씨의 해외문물 체험담을 들어본다.
비록 6박7일간의 짧은 유럽여행이지만 특별휴가를 내주고 경비를 보조해 준 구청과 잘 다녀오라며 마음의 정성과 물질적 후원을 하여준 동료직원들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나는 KLM(네델란드 항공)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넓디넓고 황량한 시베리아를 지나 11시간의 비행으로 네델란드 공항에 도착했다.
현지 도착시간이 오후 4시경이었지만 8시간의 시차로 인해 잠을 자기 위해서는 무려 17∼8시간이나 깨어있어야 했다.
우리는 3시간 가량 기다린 후 다시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의 심장인 파리로 이동했다.
유럽에서의 실질적인 첫날의 태양은 눈이 부셨다. 기다리던 차량에 몸을 싣고 파리 시내 시떼섬으로 가서 안소니 퀸이 출연한 영화로 유명한 노트르담성당을 구경했다. 성당의 규모와 거대한 대리석의 모습에 놀랐다.
곧이어 파리의 명소로 유명한 몽마르트 언덕에 올라 자유를 만끽하고 이름없는 예술가들의 삶의 흔적을 느끼기도 하였다.
달팽이 요리로 점심식사를 한 후 루브르박물관, 콩코드광장과 오벨리스크를 보았고 샹들리제 거리에 개선문을 보았다.
일행이 모두 무랑루즈의 쇼를 보러간 사이에 나는 혼자 에펠탑에 올랐다. 멀리 아련한 조명에 고고히 흐르는 세느강을 보노라니 한강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다음 날, 새벽 4시30분에 기상하여 우리는 TGV를 타고 프랑스 리용역을 출발하여 스위스로 갔다. 하지만 쇼핑만 잠시하고 이내 다시 프랑스 국경을 넘어 몽블랑의 품안에 살포시 숨쉬는 샤머니 마을로 가 몽텡베르라는 봉우리에 올랐다.
30분도 지체하지 못하고 바로 하산하여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우리는 2002 한일 월드컵으로 악연(?)이 있는 이탈리아로 향했다. 프랑스의 파스텔톤 색상이 갑자기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로 바뀌었다.
어두운 도로를 지나 밀라노에 도착한 후 저녁식사와 함께 오페라로 유명한 스칼라극장과 두오모성당, 시내 구경을 마친 후 인근 LODI호텔로 가 이탈리아의 밤하늘을 느꼈다.
다음 날 일찍이 눈을 뜬 후 피렌체로 이동하여 중세 르네상스의 도화선이 되었던 메디치 가와 단테·베아트리체의 집, 미켈란젤로 광장을 보았다. 드디어 모든 길이 통한다는 로마를 향해 출발하였고 해가 떨어질 무렵 우리는 꿈에 그리던 로마로 입성하게 되었다.
시내에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 날 아침 일찍 바티칸시국으로 향했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바티칸박물관에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보았고 거대한 규모의 성베드로성당과 광장을 보았다.
점심 식사를 한 후 로마시청과 사도 바울이 갇혔던 감옥, 원형경기장,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그레고리 펙이 손을 넣었던 진실의 문과 트레비분수를 보았고 영화 글라디에이터의 막시무스(러셀 크로)의 활약무대인 콜로세움에서 여행객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나는 일행들과 헤어져 혼자서 로마시내를 돌아다녔고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탄 후 한참을 달려 숙소로 들어갔다.
피곤하여 곯아 떨어진 일행들의 숨소리를 등에 진 채, 나는 호텔 바에서 맥주를 한잔 마시며 이번 여행을 갈무리 했다. 다음 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아쉬움과 설레임이 교차되었다.
비록 지금은 사업의 실패로 해외에 도피생활을 하지만 한때 재계를 풍미하였던 어느 사업가의 명제처럼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은 이 사회에서 나의 역할과 소명이 무엇일까 하는 작은 불씨를 가슴에 안으며 그날따라 유난히 눈부신 나의 사랑 대한민국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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