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살인범은 어떤 자일까?”
고정란이 혼잣말처럼 불쑥 한마디했다.
“금방 내 뺏어요 범인들, 5명의 패거리였는데…”
해녀복 차림의 젊은 여인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래요? 그럼. 이 피해자들은 어느 마을의 누구들인가요?”
두 번째로 고정관이 질문을 던졌을 때 인파 속에서 쏜살같이 뛰쳐나온 사나이-그는 고정관의 손목을 확 낚아채는 것이었다.
“어이, 오래간 말일세 정관이…. 학병으로 끌려갔다 전쟁 끝나고 해방된 바람에 환고향하게 된 데 대해, 무척 기쁘게 생각하네. 자세한 얘긴 다음에 하기로 하구… 잠깐 나 좀 보세!”
40대 사나이, 그는 알고 보면 고정관과 가까운 ‘괸당’(권당, 眷黨-친척)뻘이 되는 집안 사람이었다.
“아이구, 아저씨를 여기서 뵙게 되다니, 이건 면목이 없습니다. 진작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고정관은 당황해 하면서 꾸벅 인사하고, 입 속으로 얼버무린 다음 어쭙잖게 뒷고개를 긁적거렸다.
“괜찮아, 쑥스러워 할 것 없네, 가만 있자, 에 또, 잠깐 이쪽으로 와 보겠나! 긴히 할 얘기가…”
허둥대는 모습으로 더듬거리며 40대 사나이는 다짜고짜 고정관의 손목을 힘주어 끌어당겼다.
고정관은 몸의 중심을 잃고 기우뚱하면서도 얼떨결에 문제의 사체위로 시선을 기울였던 것인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숨통이 끊긴 줄 알았던 2구의 사체가 동시에 꿈틀거렸다. 그렇다면 죽은게 아니구…?
“아저씨, 감깐만요. 이 사람들 되살아나고 있는 것 같네요. 기다려보세요. 아저씨!”
고정관은 붙잡힌 손목을 확 뿌리치며 허리를 구부리고 2구의 사체를 번갈아 내려다보았다. 멀겋게 뜬 초점 잃은 눈도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기사회생(起死回生)의 조짐이 뚜렸하다. 조용석도 40대 사나이도 사체위로 시선을 기울였다.
“개새끼 죽은 줄 알았는데, 명쭐이 남아 있었나?”
40대 사나이는 치를 떨며 저주했다. 40대 사나이-그럼, 이 사람은 공범자란 말인가? 저주하는 소리를 듣고, 고용관과 조용석은 거의 동시에 허리를 펴며 고개 돌려 40대 사나이의 얼굴을 노려 보았다.
“모르면 오해할 수도 있지, 잠깐 이리로 와 보게!”
40대 사나이는 다시금 고정관의 손목을 붙잡아 난폭하게 끌어 당겼다. 영문을 알 까닭이 없는 고정관은 불길함과 불안함이 앞서는 것이었지만, 밑져야 본전일텐데! 하고, 순순히 따라 나섰다.
40대 사나이는 50m쯤 떨어진 언덕바지 근처로 고정관을 끌고 간 다음, 주위를 둘러보면서, “저 연놈은 백 번 죽어 싼 것들이야. 눈곱만치도 동정 받을 자격 없는 인간 쓰레기 들일세. 방준태(房俊太=38)라고 도선(道先)마을에 사는 놈인데, 민족반역자란 말야.
일본 고등계 형사의 앞잡이였어, 돈과 여자를 바치지 않으면 죄 없는 사람을 독립운동가로 몰아 골탕먹이는 짓을 직업으로 삼아온, 천하의 악당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네, 세상이 바뀌었는데 뿌린씨 거둬야지! 다만 제 집구석에서 뒈지지 않고, 신성한 우리 ‘세불바위’ 근처에서 개죽음을 당했다는 게 불결하고 찜찜할 뿐이라구.
내 말 알아듣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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