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신의 실크로드기행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05-26 19:5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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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하게 변해버린 타슈켄트 밤 21시만 되면 치르칙크로 들어가는 버스가 끊어지고 치르칙크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버스는 그 이전에 모두 없어져 버리니 마음놓고 늦게까지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저녁밥을 먹지 않고 스비에타의 가족 모두가 기다리고 있으니 밤은 더욱 짧기만 했다.

업무상 아니면 특별한 정치상황을 고려한 외국인을 모두 포함해 약 250만명의 인구를 가진 타슈겐트는 구 소련시절만 하더라도 면적으로 4번째로 큰 도시였고 센츄럴 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과학 등 모든 분야의 중심에 섰던 우즈벡키스탄의 수도였지만 지금은 알마타나 비슈켁과 비교하기 싫어할 만큼 잘 정비된 가로수와 넓은 도로, 고층건물들은 이젠 형편없이 변해버렸고 실크로드의 중심지라는 옛 명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타슈겐트에서 가장 옛것을 간직한 추호수 바자르 또한 그 주변의 건물들도 왠지 모르게 흥미를 자아내기엔 역부족 이였다.

엄청나게 큰 돔과 작은 돔으로 이루어진 추호수 바자르안에는 센츄럴 아시아의 맏형다웠던 시절만큼이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지금은 우즈벡말을 모르면 시장에서 물건 하나 살 때마다 곤혹을 치러야만 했고 바자르를 통하는 문은 타직스탄에서 원정온 걸인들로 가득했다.

추호수 바자르 뿐만 아니라 타슈겐트의 모든 관공서와 건물들, 지하철, 광고표시판은 100% 우즈벡말로 표기되어 있었고 우즈벡키스탄에서의 러시아말은 각 공화국 민족간의 언어소통을 담당할 뿐이었다.

느리다 못해 걷는 것이 빠르다 싶은 알마타의 트로이 버스와는 달리 밤새 마신 보드카가 아침까지 술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처럼 급출발과 급정거하는 지하철과 트람바이는 타슈겐트의 도로 한가운데를 질주하고 있었다.

꽤나 넓은 타슈겐트이지만 부채꼴 모양으로 이루어진 시내의 도로는 방사선으로 뻗어있어 어지럽지 않게 돌아볼 수 있어 좋았다.

티무르 동상을 중심으로 쭉 뻗은 아트바트 거리가 옥의 티였다.

모스크바나 상트베테르부르그의 아트바트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지만 그런대로 체면 유지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팔리지 않아 먼지가 가득 묻어있는 그림들과 제정 러시아의 화폐를 시작으로 구 소련의 루블 그리고 구 소련이 붕괴되고 15개 공화국에서 독립 초기에 쓰던 각종 화폐들이 여행자의 눈을 끌고 있었지만 아트바트의 길가엔 외국인의 인상을 찌푸리기에 할만한 요소들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널빤지 간이카페와 소음에 가까운 한국판 가라오케 그리고 별별 잡동산의 물건을 팔고있는 상점들이 즐비해 실망스러움을 함께 해야만 했다
여행전문가 kapabah@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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