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대하소설 황제의 싸움터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06-11 18: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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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제주 4.3 民亂 (18 ) 銃대 멘 젊은 ‘괸당'들

“형님, 잠깐만요!”

이만성과 헤어져서 동구 밖으로 빠져나왔을 때 조용석이 다급한 목소리로 고정관에게 불쑥 말했다.

거나하게 술이 취한 상태였지만, 신경이 날카로운 고정관은 코침 맞은 호랑이 잠에서 깨어나듯 움찔 놀라 끌고 가던 자전거를 세우며, 윗몸을 비틀고 고개를 뒤로 돌렸다.

“형님, 뭘 놀라고 그러세요? 별것도 아닌데…. 다름이 아니고 말이요.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도선마을로 직행하면 어떨까 싶어서요. 땅거미는 깔렸지만, 지금 7시(19시)밖에 안 됐거든요”

“음, 나도 그걸 생각하고 있었어. 특공대장 김순익을 만나는 이른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하지만 오늘은 안 돼! 찾아간다 해도 만날 수 없을 걸세. 우리를 기다리고 집에 한가롭게 앉아있을 턱이 없지.

설령 집에 있다해도 만나기 어려울터이구, 우리는 빨리 귀가해서 작전계획을 세우는 일이 급선무라고 생각되네”

“어쩌면 형님의 생각과 저의 생각이 그토록 일치할 수가 있을까요? 형님 마음 떠보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짐짓 떠 본 셈이 되고 말았네요. 혹시 형님은 다른 묘책이라도 갖고 있나해서 은근히 기대를 걸었더랬는데.

역시 답은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니 맘이 홀가분해졌어요. 빈틈없는 형님의 성격 알아줘야 한다니까”

“알아줘서 고맙군! 혹시 술은 취했어도 맘에 없는 소리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은 아니라고 보네만, 굳이 도선마을에 다녀오고 싶으면 내 말 확인해보는 뜻에서 혼자 다녀와도 괜찮을 것 같군…”

고정관은 슬며시 빈정거리고 나서 자전거를 끌고 도망치듯 걸어 나갔다.

“형님, 지금 농담하신 건 아니겠지요?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혼자 오붓하게 김순익을 만나 한잔 걸치며 친일파 타도문제 논의하고 귀를 한다? 그것도 멋있는 일 아닐까요?”

시큰둥하니 자전거를 밀고 뒤따라가면서 조용석은 잠꼬대하듯 지껄였다.

“자네, 취했어. 딴 생각말고 열심히 따라오기나 하라구”

“작전이고 나발이고 2차를 갔으면 했는데…”

“………”

고정관이 입을 다물어 버렸기 때문에, 조용석도 더는 잡담을 늘어놓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자전거를 끌고 땀을 뻘뻘 흘리며 10분도 걸리지 않을 신작로까지의 길을 40분도 더 헤맨 끝에, 운천동을 지나 신작로에 빠져 나왔다.

그동안 술도 거의 깨어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자전거에 몸을 싣고 질풍같이 내달렸다. 20분도 채 걸리지 않아서 한남마을에 돌아왔다.

그들은 곧 대문 앞에서 자전거를 세웠다.

그들의 집은 공교롭게도 울타리를 가운데 두고 나란히 자리잡고 앉은 보기 좋은 이웃이었다.

게다가 두 사람은 모두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온 외로운 운명의 외톨이들인 셈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어머는 40대 중반의 과부라는 점과 직업이 해녀라는 공통점을 지녔다는 것이 특색이었다. 게디가 3칸짜리 초가집 한 채에다 손바닥만한 울안과 한뼘 크기의 앞마당이 재산의 전부라는 것도 공통점이었다.

두사람이 자전거를 세운 곳은 고정관의 집 대문 앞이었다.

“자. 함께 들어가세, 자네 말마따나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작전계획을 세우기로 하자구”

고정관이 대문을 열며 조용석의 손목을 끌어당겼다. 그런데 두 사람이 대문 안으로 첫 발을 들여놓았을 순간이었다.

“아니, 저게 뭡니까?”

“글세, 어디서 날아왔나? 종이조각 같은데…”

두 사람은 눈길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괴물체 앞에 압도되어 엉거주춤했다가 거의 동시에 허리를 구부렸다. 괴물체를 집어든 사람은 고정관이었다.

“편지잖아! 자, 어서 방안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자구!”

두 사람은 방안으로 뛰어들었다.

“맙소사! 협박편지가…”

고정관이 눈을 부릅뜨며 떨리는 목소리로 청중 아닌 협박편지를 상대로 사자후를 터뜨렸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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