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찾아간 곳은 문제의 40대 사나이 고중인(高仲仁)의 집이었다.
몇시간전 세불곶 사건현장에서 잠깐 만난 바 있었던 사이여서 그런지, 고중인은 반가워하면서도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이 밤중에 자네들이 왠일인가? 누추한 방이지만, 어서 들어오시게. 낮에 만났을 때 방문하겠다는 말 없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두 사람의 손목을 끌어당겼다.
“아닙니다. 어디를 가는 길인데 잠깐….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아저씨께 급히 문의할 일이 있어서…”
고정관이 꽁무니를 빼며 사양하는 제스처를 쓰자, 고중인은 잡았던 손을 슬며시 놓았다.
“아저씨께서 잠깐 저의 집으로…아니 그보다도 이쪽으로 나와주시렵니까? 잠깐이면 됩니다”
고정관은 대문 밖 골목길로 그를 데리고 나갔다.
다름이 아니고…방준태를 죽인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저씨께서 짚이는 게 없을까 하구요. 혹시 짐작이 간다면 살짝 귀띔해 주셨으면 해서요”
“그건 전혀 알 수가 없어. 내가 현자에 달려갔을 때, 범인들은 그곳에 없었으니까. 포구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고 줄행랑을 치고만 게야.
도무지 짐작이 가지를 않는다구. 두고보면 곧 알게 될 터이지만…”
고정관은 그냥 해본 소리였지만, 고중인은 고지식하게 사실을 사실대로 얘기해 주는 것이었다.
“어쩌면 아저씨는 알고 계시지 않나 싶었었는데…”
고정관은 실망한 것처럼 넉살좋게 입맛을 쩍 다시고 나서, ‘그러면 그 때 저희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었던 젊은 해녀 있잖았습니까? 그 여자는 누구였는지요?”
“음, 그애…김정애라고 우리 동네 사는 애야. 남편과 이혼하고 나서, 틈틈이 방준태를 만나 죽자살자 밤낮 붙어 다니는 화냥년인 셈이지.
졸지에 기둥서방을 잃었으니 얼마나 실망이 컸겠어? 눈물 흘리면서 범인에게 욕설 퍼부은 사람은 그 애 하나 뿐이더라니까”
“기둥서방이 좋아서 재혼도 안하고…. 방준태의 여자 녹이는 기술이 대단했었나 보지요? 김정애라…몸매만 보아도 요부형이더라니…”
조용석은 군침을 꿀꺽 삼키고, 혼자 씨부렁거리며 수첩을 꺼내 그녀의 이름을 적어 넣는 것이었다.
“어쩌면 협박편지는 그녀쪽의 놈팡이가…?”
조용석은 그녀와의 연결고리가 아쉬운 듯 우격다짐식으로 협박편지를 갖다 붙였다.
“뭐야…? 협박편지라니 누가 누구에게…?”
고중인이 귀를 쫑긋 세우며 민감한 반응을 나타냈다. 순간, 고정관은 등덜미에 식은땀이 부쩍 솟았고, 불을 밟았을 때처럼 가슴이 뜨끔했다.
“아, 아닙니다 아저씨. 신경쓰실 것 없습니다. 요다음 찾아뵙고 궁금한 대목 여쭤보기로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 참 저희들 다녀갔다는 얘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주십시오. 저희들이 여기 온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요”
“알았어, 약속함세, 다음 꼭 들러주게!”
두 사람은 허겁지겁 고정관의 집으로 되돌아왔다.
어머니는 아직도 돌아와 있지 않았다. 때가 때인만큼, 고정관은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혹시 납치를 당하기라도 했다면…?
“자네 어머님은 집에 계신지 가보고 오게. 우리 어머니는 어딜 가시고 여태까지 안 오시는지…왠지 불길한 생각이 든다니까”
조용석이 코침 맞은 짐승처럼 덴겁을 하고 뛰쳐나갔다. 어쩌면 조용석의 어머니도 함께…? 불길한 쪽으로 고정만이 생각을 몰고 가려는 참이었는데, “다녀왔는데요, 형님! 저의 어머니도 안 계십니다. 두 분께서 함께 변을 당하신게 아닐까요?”
조용석이 울상을 지으며 헐떡거렸다.
“기다려보자구 차분히…. 마을가셨다 늦어질 수도 있잖아? 설마하니무슨 철천지 원수라고, 죄없는 어머니들을 납치했겠어? 속단은 금물이야. 자, 들어오게. 침착하니 기다리면서 협박 펴지 내용을 꼼꼼히 분석해 보기로 하세!”
조용석이 허둥거리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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