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도 없이 납치극을 벌이고 협박장을 보낸 악당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우두머리는 하나이지만, 도발행위 자체를 놓고 볼 때 치밀하게 조직이 되어있는 가공할만한 집단임엔 틀림이 없어 보인다.
따라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막강한 힘-제주도를 통째로 집어삼킬 수 있는 야망과 뚝심의 소유자가 아닐까하는 추측도 가능케 한다.
고정관도 조용석도 이심전심으로 거의 동시에 똑같은 추측을 하고 있었다.
다음 순간, 두 사람은 자신에 대한 평가 쪽으로 추측의 각도를 되돌렸다.
그러자 자신이 악당들을 깔아뭉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열등감에 찌들어있는 것이 악당이라고 볼 때, 두 사람은 악당으로부터 질시와 선망과 증오의 대상이 되어있다는데 반해 우월감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된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어머니는 여장부 중의 여장부임을 발견하게 된 것도 큰 수확으로 꼽을 수 있었다.
엄동설한이 되어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른 절개를 알아볼 수 있는 것처럼, 엄청난 사태를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랑스런 어머니상(像)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악당은 어머님들과 저희들에게 잠든 호랑이 코침 주듯 자살행위를 저지른겁니다. 죽음을 각오한 불장난이라는 얘기지요.
죽여달라는데 소원들어줘야잖겠어요? 자, 이렇게 하자구요. 어머님들 바싹 다가앉아 주십시오”
고정관의 말이 끝나자 세사람은 무릎이 맞닿을 정도로 바싹 다가 앉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잠복 근무할 수 있는 정예의 특공대원 5∼6명을 채용해야 될 것 같습니다.
우리의 집 주변에 덫을 놓아 감시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 자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도록 해야 하구요.
괴한들은 은밀히 다가와서 동정을 살피려고 기웃거릴 겁니다.
그때 우리는 덮치지 말고 추적을 해야해요. 우두머리가 숨어있는 곳으로, 그자들은 우리쪽 사람을 얌전히 안내해 줄 테니 말입니다”
고정관은 모사꾼 같은 목소리로 계책을 밝히면서 세사람의 얼굴빛을 살폈다. 흐릿한 불빛이 비추는 귀기어린 분위기였지만, 표정들이 더없이 밝다. 활력이 넘쳐흐르고 있음을 알 것 같았다.
“저희들은 고향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동네 사정을 알 수 없잖아요. 어머님들이 맡아서 적임자를 뽑아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조용석이 의견을 말한 다음, 고정관의 얼굴위로 시선을 기울였다.
“음, 나도 동감이야. 어머님들이 뽑아주시지요.
‘괸당’ 중에서 용기 있고 책임감 있고 의리 있는 젊은이들이어야겠는데, 빠를수록 좋습니다. 우리 모두의 생사문제와 직결된 일이니까 말입니다.”
고정관과 조용석의 눈은 두 어머니 얼굴위로 쏠렸다. 윤여인과 고여인은 언니 먼저 아우 먼저 식으로 입을 다문채, 눈짓얘기를 나누다 거의 동시에 입술을 들먹였다.
“난 벌서 손꼽아놨어. 세사람은 내가 책임질 테니까 나머지 세사람은…”
윤여인의 말끝을 맺기도 전에, “나도 3∼4명 꼽아놓고 있어요. 그럼 우리 이름을 적어서 얘들에게 건네주기로 해요. 결정권은 얘들의 소관이니까”
“고맙습니다. 어서 명단을 보여주시지요. 아침일찍 교섭해서 극비리에 활동을 개시하도록 하구…. 그럼, 이제부터 잠깐 눈들을 붙이셔야겠지요. 저는 아까 좀 잤습니다. 제 걱정은 마시구…”
두 여인은 특공대원 후보자 명단을 고정관 앞으로 내놓고 그 자리에서 잠시 새우잠을 잤다. 고정관은 봉창의 구멍을 통해 탐색의 눈을 껌벅거리고 있었지만, 세불곶 파도소리만 적막하게 들려올 뿐 검은 그림자는 얼씬거리지 않았다.
세사람은 2시간 쯤 눈을 붙였다가 고여인이 먼저 깨어나자 모두들 뒤따라 일어났다. 두어머니는 서둘러 식사준비를 했고, 잠시후 식사가 끝나자 따로 따로 외출을 했다. 악당에 대한 추격전은 곧 벌어질 판이었다.
그런데 고정관과 조용석은 이현석을 데리고 특공대장 김순익을 만나기 위해 부랴부랴 도선마을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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