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안으로 사라진 김순익의 아내, 그녀는 과연 어떤 해답을 갖고 나타날까? 세사람은 넋을 잃고 부엌쪽을 바라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 이렇게 지루할 수가… 글자 그대로 ‘일각이 여삼추’구나!
50초는 지났고 60초가 되었을 때, 부엌안의 분위기가 뒤숭숭함을 세사람은 퍼뜩 느낄 수 있었다. 꺼림칙한 조짐이 세사람의 가슴패기 맨살위에 개미떼가 기어다니는 것 같은 스멀거림을 안겨주고 있었다.
이거 미치고 환장하겠구먼! 세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중얼거리며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는 순간이었다.
“오래 기다리셨죠. 안으로 들어오시래요” 세 사람은 움찔 놀라며 고개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때였다. 세사람의 코 앞으로 방긋 웃는 얼굴로 나타난 여인, 그것은 좀 전에 찬 바람나게 대했던 문제의 그녀였다. 그리고 뒤이어 툇마루를 내려서는 사나이, 그것은 김순익이 아닌가.
“아니. 형님들 어서 오십시오. 이게 몇 년만입니까?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세사람의 손을 붙잡아 세차게 흔들어대며 김순익은 온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환호성을 올렸다.
“오래간만일세, 자네하고 헤어진지 어느덧 10년도 더 된 것 같군, 어렵사리 객지생활 하다보니 무심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네. 하지만 의협심에 불타는 이 고장 제 1의 중견 청년이자 용감무쌍한 특공대장을 왜 잊었겠는가?
우리 이제부터 굳게 손을 잡고 우리 고향을 위해 보람된 일 해보자구! 항상 자네를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찾아온 것 아닌가”
고정관은 어깨를 토닥여주면서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정관이 형님이야 해외유학을 떠나버렸으니 만날 기회가 없었겠지만, 나는 국내에 있으면서도 소식한번 전하지 못했으니 할말이 없네. 양해를 바란다는 말밖에…”
조용석은 면괴스러운 듯 기어드는 목소리로 얼버무렸다. 그의 눈에도 눈물이 괴어 있었다.
“형님들 왜 이러세요? 저의 쥐구멍 찾는 모습보고 싶어서, 작정을 하고 오셨나요?”
김순익은 몸 둘 바를 모르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송구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왜 멍하니 서서 구경만하고 있는게야? 인사드려 응!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존경하고 숭배하는 나의 선배님들이라니까”
김순익은 때릴 것처럼 손을 격하게 하동거리며 아내에게 인사하라고 엄포아닌 엄포를 놓았다.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아까는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이 양반에게 엄중히 책임을 물어주시오. 저는 지시에 따랐을 뿐이니깐요”
김순익의 아내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간댕거린 다음, 유머 섞인 목소리로 발뺌하는 시늉을 했다.
“형님들 가신 다음엔 가만 안둘테니까”
김순익은 아내 째려보는 쇼를 연출한 다음,
“아닙니다. 농담이에요. 곧 자세한 말씀 드리겠습니다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잠깐 속임수를 써서 큰 죄를 지었지 뭡니까. 너그러운 용서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고 두 사람에게 번갈아 꾸벅거렸다.
“다 알고 있네, 용서고 뭐고 아예 그런소리 하지를 말더라구. 나는 자네의 구김살없는 동심같은 순박성 그게 예나 지금이나 맘에 든다니까”
고정관은 뜨거운 손으로 김순익의 어깨를 토닥였다.
“고맙습니다 형님. 자, 들어오시지요. 누추한 방입니다만…. 실수학교 나오면 면서기로 취직들을 잘만하던데, 저는 못난 탓으로 공무원들로부터 미움을 샀고, 그래서 농사짓는 일에만 매달렸던 겁니다.
이제부터 형님들 경험담도 듣고, 저의 지나온 일에 대해서도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간밤에 꿈자리가 좋았었는데, 정말 구세주를 만난 기분입니다.”
김순익의 뒤를 따라 세사람은 대청마루를 거쳐서 안방 아랫목으로 정중히 안내되었다. 김순익은 독서도 즐기고 있는 듯 책장에는 여러가지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미리 준미가 되어 있었던 것처럼 푸짐하게 차린 술상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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