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무환(有備無患)-이만성은 몇발짝 뒤로 물러서다. 맘속으로 방어태세를 갖추면서….
강영범의 우람한 체격과 맞닥뜨리는 순간, 위압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 때문이었다. 보아하니 머리만 좋은 것이 아니라 뚝심에도 자신이 있기에, 솜씨자랑 한답시고 겁도없이 뛰쳐나왔을 것 아니겠는가?
“당신이 강영범? 강영범씨 틀림없다면 저 알량한 하수인들이 봉병 당하게 만든 장본인이 틀림없겠지요? 마침 잘 나와주었소. 이번은 당신 차례라는 것, 각오가 되어있겠지요? 여기 고꾸라져 있는 당신의 충성스런 하수인들이 먼저 공격을 해왔기에 살짝 다독거려 주었수다. 정당방위였지요. 우두머리께서 보복을 하려고 왕림하셨나 본데, 어디 그 솜씨 한번 구경이나 해볼까요?”
강영범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하면서, 이만성은 상대방의 인격과 자존심 깔아뭉개는 섬뜩한 도전장을 내밀었다.
동경제국대학의 수석졸업? 잘 만났다. 하늘 높이 치뻗은 그 썩어빠진 콧대 우지끈 뚝딱 깨부숴주마! 이만성은 필요이상으로 흥분하게 되었고, 살짝 건드려도 펑하고 터질 듯 일촉즉발의 위기는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아, 제가 실례말씀을 했다면 용서해 주세요. 우리 애들 역성 들어주려고 온 게 아닌데, 오해를 하셨나 봅니다. 우리 애들의 잘못에 대해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어서 화를 푸시고, 저의 집으로 가시지요. 조용히 드릴 말씀이 있으니까요”
“조용히 내게 할 얘기가…?”
이만성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겉모습과는 차이가 있는 기상천외의 언동이 아닌가. 아직 강영범의 속셈을 미루어 헤아리기엔 시기상조다. 몇마디 말에 현혹되어 방심한다는 것은 금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바람은 지나갔고, 잔설을 녹이는 삽상한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분위기임을, 이만성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강영범은 고개를 꾸벅거리며 이만성의 앞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섰다. 천천히 손을 내밀어 옷 소매를 부여잡고 살며시 끌어당기지를 않는가.
이만성은 면박을 주었던 후련함이 낯뜨거운 치욕감으로 바뀌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그 직선적이고 다혈질적인 성격이 이익을 보장할 때도 있지만, 손해를 안겨줄 때도 있어온 사실을 되씹어 볼 겨를은 없었다.
“사실은 시간이 없는데…. 좋아요. 그럼, 먼저 가 계시오. 이 친구들하고 얘기 좀 나눈 다음 함께 가겠수다!”
언제 그랬더냐는 듯이 이만성은 마음이 약해지면서, 새침떼기 목소리로 겸손스레 나긋나긋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러시겠습니까? 그럼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테니 꼭 와 주시는 겁니다.”
“한다면 하는 놈입니다. 오지 말라고 해도 갈 겁니다. 어서 가 계시오!”
강영범은 움츠린 모습으로 발길을 돌렷다. 이만성은 고꾸라진 괴한들 곁으로 걸어갔다.
“죽은체 하지말고 일어섯! 살고 싶으면 나를 따라오란 말야!”
두 괴한은 비틀거리며 후미진 뒷골목으로 이만성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은 길바닥에 꿇어앉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밝힌 진술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①고정관과 조용석을 덮쳐 입술을 깔아뭉갤 것. 두 번다시 웅변을 못하게끔…. 혀를 자르든가….
②두 사람이 부재중일 때엔 협박편지만 대문안에 떨어뜨린다.
③가족중의 반항자나 외부의 목격자가 있을때엔 붙잡아 치명상을 안겨준다.
세 사람은 협박편지를 떨구었지만 고정관-조용석의 어머니들을 붙잡아 입에 재갈 물리고 손발을 결박해서 ‘괴팡’속에 감금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어떻게 그 같은 천인공노할 음모를…. 괴한들로부터 자백을 받은 다음, 이만성은 강영범의 집을 향해 쏜살 같이 달려갔다.
“고정관과 그 사람은 ‘조선학병동맹’ 책임자라는 사실 알고 계시겠지요?”
강영범은 방안으로 이만성을 불러들이기 바쁘게 첫 마디를 그렇게 꺼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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