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후반에 내가 경제개발계획을 짜는데 몰두하고 있을 때 직속상관으로 김 박사를 모셨다.
하루는 그분이 나를 부르더니 작은 영어원서를 건네 주었다. 신고전학파이며 오스트리아 학파의 태두였던 미제스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의 학생들에게 자유시장 경제에 대해 강연한 원고였다.
이 강연에서 미제스(Mises)는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한다.
프랑스 혁명때 로베스 피엘이 집권하게 되었다. 시민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서 우유값을 강제로 반으로 내렸다. 어기는 사람은 길로틴으로 끌고가 처형하였다. 엄청난 손해를 보는 목축업자는 죽느니 차라리 그 사업을 포기하였다. 그리하여 공급은 반으로 줄고 반면 어린아이들에게 먹여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는 고로 가격은 폭등하였다.
그래서 ‘안’을 낸 것이 젖소의 사료값을 반으로 내리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해서 사료가격을 반으로 내렸고, 어기면 길로틴으로 끌고가 처형하였다.
사료업자들이 죽느니 사료생산을 중단해 버렸다. 사료값이 다시 3~4배 폭등하였다. 그 결과 우유값은 10배가 뛰었다. 그리하여 종전의 10세까지 먹을 수 있었던 우유가 간난아이도 먹일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바로 시민 폭동으로 이어졌다. 로베스 피엘은 단두대에 끌려가게 되었다. 이때 파리의 길거리에서 주부들은 이렇게 외쳤다. 저기 더러운 최고 가격이 가고 있다.
단아한 학자 같은 풍모 속에서 그 선배님의 종교보다도 깊고 장미꽃보다 붉은 우리경제에 대한 사랑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아웅산에서 순직후 몇 년이 지난후에 후배 몇사람과 더불어 그 부인(이순자 여사)을 만났다. 부인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였다.
경제수석으로 있을 당시 대학교수로 있던 김 수석 처남과 이런 논쟁을 벌렸다.
군사 쿠데타에 의해서 집권하고 반 민주적인 독재정권인 “전두환 대통령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는냐” 힐난했다.
이때 김 수석은 이렇게 답변했다. “나는 전두환 대통령을 위해 일하기보다 대한민국 경제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대통령을 설득하는 것이다. 목표는 대통령이 아니고 우리 경제다. 우리경제가 민주화만 된다면 그것은 정치적 민주화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목표다”라고 하였다.
해마다 10월이 오면 그분에 대한 그리움에 젖는다. 그분이 그때 산화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불이 넘는 나라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아! 그러나 이것은 부질없는 나의 생각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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