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 산하 법원공무원 제도개선추진단은 최근 주사보(7급) 승진시험을 과락제로 바꾸고 사무관(5급) 승진시험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원공무원승진시험제도 개선방안’을 마련, 지난달 21일 전국 법원 사무국장 회의를 거쳐 본격검토중이라고 9일 밝혔다.
법원이 마련한 개선 방안은 현행 승진시험 경쟁이 과열돼 법원 직원들이 업무보다 승진시험에 몰두하고 대민 서비스는 뒷전으로 밀려나 `불친절한 법원’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현행 승진제도는 주사보의 경우 매년 500명에게 승진시험 자격을 주고 그중 200명을 선발하고 있다.
승진시험 자격을 얻는 500명의 2배수인 1000명 가량이 시험준비에 뛰어들고 이는 전국의 8급 직원 2000명의 절반 수준이어서 여러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시험을 준비하는 직원들은 본연의 업무보다 시험준비에 치중해 근무시간에 자리를 비운 채 후배 직원에게 업무를 미루는 일이 빈번하고 인사철이 되면 업무량이 많은 재판부보다 일반 행정업무를 맡으려는 자리 다툼도 벌어지고 있다.
법원의 한 직원은 최근 내부통신망에 “법원 공무원이 시험을 위해 하루에 반 이상 자리를 비워도 징계하지 않고 당연시 여기는 모습이 전국 법원에서 조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며 “이런 법원 내부사정을 국민이 안다면 법원은 또한번의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하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법원 분위기상 아무리 자신의 업무를 열심히 해도 승진시험에 떨어지면 낙오자 취급을 받기 때문에 누구든 시험경쟁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다.
시험 탈락에 따른 휴유증도 적지 않다.
지난 4월 시행된 7급 승진시험에 응시했다 탈락한 한 직원은 “처가쪽 친척들을 볼 면목이 없어 시험에 합격했다고 거짓말이라도 하고 싶었다”며 “대입시험 때 받았던 스트레스보다 더 큰 압박을 받는다”고 털어놨다.
이때문에 시험준비생들은 퇴근후에는 노량진이나 신림동 등 고시학원을 찾거나 아예 집에 들어가지 않고 법원 기숙사에 자리를 잡아 수험생활을 하기도 한다.
정보처리기능사 등 자격증이 있으면 시험 2∼3문제에 해당하는 가산점이 주어져 신입 직원들도 법원 일을 배우기보다 자격증을 따는데 관심이 많다. 하지만 정작 이 같은 자격증이 법원 업무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대다수다.
제도개선추진단은 7급 주사보의 `승진시험’을 `능력검증시험’으로 바꿔 과락없이 전과목 일정한 점수 이상 얻으면 전원 합격시키고 합격자들을 상대로 교육과정을 실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대신 5급 사무관은 시험을 강화해 능력에 따른 승진이 이뤄지도록 해 조직활성화를 모색한다는 게 제도개선추진단의 복안이다.
하지만 법원 내부의 근무평정에 대한 신뢰도가 그리 높지 않은 상황에서 그나마 객관적이었던 시험 비중이 줄면 승진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승진자가 늘면 인사적체로 다시 경쟁이 심화된다는 지적도 있어 근본적인 제도개선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승철기자 lsc@simin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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