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눈물 (1)

김유진 / / 기사승인 : 2010-02-07 15:08:01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홍문종 경민대학 총장 (홍문종 경민대학 총장)

삼성 이건희 전 회장의 ‘눈물’이 화제다.

선친인 故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장에서 인사말을 하는 도중 울먹이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아마도 선친을 추억하다가 순간적으로 복받치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오늘날 삼성이 차지하고 있는 위용만큼이나 화려한 감격의 일단을 담은 측면도 있겠지만 이 전 회장의 눈물은 나의 관심을 끌었다.

나 역시도 아버지가 일궈놓은 학교를 가업으로 이어가는 남다른 입장에서의 동병상련 때문이었을까? 선친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각오를 다지는듯한 이건희 전 회장의 한마디 한마디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인터넷을 통해 이날의 기념식 정황을 지켜보면서 최소한 삼성의 미래가 있어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삼성이나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한 평가는 별개로 한 관점이다)

오늘날 삼성은 일취월장 무서운 기세로 브랜드 파워를 키워나가는 독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 지 이미 오래된 상황이다.

더구나 이 전 회장은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안착시킨 일등공신으로 평가받는 성공한 2세 경영의 대표격인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친의 유지를 계승 발전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고 한 이 전 회장의 취지는 주목할 만한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겸양이나 인사치레를 의미하는 내용이라기보다 안주하지 않고 계속 뻗어나가겠다는 확실한 미래비전의 의지를 담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에 태어나 일본 식민지생활을 경험했고 우리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는 가운데 가업을 세운 창업주의 가치관이, 부모의 유지를 철저히 받드는 자식에 의해 여전히 살아있는 정황은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삼성 경쟁력의 본질을 담고 있는 정신적 지주의 근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게다가 일본은 물론 전 세계를 제치고 1등 브랜드의 파워를 자랑하는 현실을 감안해도 삼성의 미래 전망은 긍정적일 수밖에 없지 싶다.

우리의 경우 대부분의 경영 후계자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편이다. 대부분의 창업자들이 2세에게 경영권을 이양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2세 경영인들의 뼈아픈 실패 사례가 적지 않아서인지 세습 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그다지 우호적인 편은 아니다.

그동안 수많은 재벌 2세가 있었고 재벌기업이 있었고 굴지의 단체들이 있었지만 2세의 수성 성공으로 발전하기보다는 몰락해서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많았던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시각일 수도 있다.

치밀한 전략과 실행력이 공고한 실전을 바탕으로 한 창업세대의 안정적 기업 운영에 비해 선대와 달리 모든 게 부족하고 미숙하기만 한 2세대 경영의 불안한 기업 운영 상황이 큰 차이로 비교되는 것도 사실이다.

다음 세대가 기업 경영에 관한 모든 준비를 마친 상황이면 몰라도 그렇지 못할 경우 반드시 사단이 일어나게 돼 있다.

창업주의 조력 없이도 독자적 경영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경영적 자질과 능력을 배양하는 치밀한 과정이 불가피한 이유다.

극명한 예를 들자면 우리 지역만 해도 예전부터 동네 사람들이 인정(?)하는 규모의 富者집이 10여 곳 정도 되는데 그 중에 지금까지 최소한 자기 앞가림 하고 선친의 가업이나 가산을 이어가는 집안은 몇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다음 세대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창업세대의 걱정도 무리가 아닌 셈이다.

더구나 특별히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하는 사회현상도 우리 사회에서 가업 수성을 더욱 더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마당이다.

나 역시 평소 아버지께 수성이 창업보다 어렵다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편이다.

학교 운영에 관해 불안하기만 한 아버지의 걱정이 담겨있는 메시지다.

그렇더라도 아버지의 지나친 노파심이 부담스러울 때가 종종 있음을 고백한다.

그 속내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어느 땐가는 ‘내가 정복한 땅보다 더 넓은 땅을 정복하라’며 아들을 격려했던 알렉산더 대왕의 부친 필립의 경우를 들어 “제게 걱정만 하시지 말고 비전으로 격려해 주세요”라고 하소연 한 적이 있을 정도다.

세습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여러 가지 면에서 동의하는 측면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선 세대가 자신의 유지를 받들 적임자로 자식을 선택하는 결정이 반드시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의 경우를 봐도 그렇고 세습이 당연시됐던 조선왕조의 역사를 통해서도 직계의 가업 계승이 반드시 부정적인 결과만 초래했던 건 아니다.

세종대왕만 해도 부친인 태종의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한 왕권을 가업으로 물려받아 수성과 번영에 성공한 케이스다.

가업을 승계 받아 수성에 성공할 수 있었던 왕도는 첫째도 교육, 둘째도 교육, 셋째도 교육이라고 할 만큼 오로지 교육에 달려있었다는 사실이 수십년이 지난 오늘날 확인되고 있다.

가정교육이 됐건 학교교육이 됐건 또 사회교육이 됐건 교육을 제대로 받은 집안만이 그 명맥을 제대로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답은 간단하다.

가업을 잇는 적임자를 만들기 위한 트레이닝과정 속에 그 모든 정답이 들어있다고 본다.

다만 한 가계의 가업을 이어가기 위해 어느 정도의 준비와 훈련 과정이 필요로 하는 건지는 계량할 수 없지만 말이다.

언젠가 알고 지내는 삼성맨 중 한 사람에게 “삼성의 미래를 위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이건희와 이재용”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대답한 상대의 심중까지 헤아릴 길이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사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 역시 집안의 기대가 모인 가업과 국가와 민족을 위한 과업을 잘 받들고 수행해서 나름대로 자부심도 갖고 역사와 선대 앞에 최선을 다했노라 당당하게 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한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유진 김유진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