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바디스’는 학창시절 단체관람 단골 메뉴였던 탓에 누구나 한번쯤은 접했던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쿼바디스’에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극장의 대형화면을 가득 채우며 활활 타오르던 로마 시가지와 그 정경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던 네로가 눈물을 눈물단지에 쥐어짜던 엽기적인 모습이다.
비록 극중 역할이긴 했지만 당시 네로가 흘렸던 눈물을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 건지 알쏭달쏭했던 기억이 난다.
비단 영화에서 뿐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수없이 많은 ‘눈물’을 만난다.
각 분야의 스포츠 스타가 흘리는 감격의 눈물은 보는 이들에게 엔돌핀을 돌게 하는가 하면 가족이나 연인의 눈물은 감정의 종류와 상관없이 가장 빠르게 감정을 이입시킨다.
그 밖에도 사랑과 이별의 눈물, 통한에 찬 눈물, 억울함이나 반가움에 흘리는 눈물 등 각각의 감정에 따라 눈물의 종류 역시 헤아릴 수없이 많은 게 사실이다.
대부분의 경우 눈물을 흘리는 이유가 명확하지만 간혹 불분명할 때도 있다.
특히 눈물 흘리는 주체가 여론의 관심을 받는 대상일수록 분분한 해석이 이어지기 일쑤다.
선친의 100주년 기념식장에서 보인 삼성 이건희 전 회장의 눈물도 후자에 속하는 경우다.
울먹임 하나만으로도 건재한 근황을 담은 사진과 함께 각 언론에 도배하다시피 보도될 만큼 1등급 뉴스메이커이니 만큼 당연한 결과다.
나는 어제 블로그를 통해 2세 경영인으로서의 성공을 인정하는 의미에서 그의 눈물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바 있다.
하지만 실상은 많은 사람들이 그의 눈물을 부정적이거나 냉소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악의적인 해석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게 그의 솔직한 현주소라고 말해주고 싶다.
오늘의 삼성은 오래 전 밀수사건부터 최근의 1인 특별사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삼성의 금자탑이자 대한민국의 금자탑이라는 사실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이건희 전 회장이 흘린 눈물 속에 그런 의미의 눈물 한 방울도 들어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일가가 누리고 있는 富는 대한민국 GNP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라고 한다. 가히 세계적 반열에 들만한 자산이다.
그런 그이기에 같은 식탁에서 손님들은 냉동 프라그라를, 이전회장 부부는 냉장 프라그라를 먹었다는 수근거림 정도는 묵인될 수 있다고 본다.
천만원짜리 와인을 마시는 고급 취향 역시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개인자산 증식에 앞서 그동안 삼성의 미래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피땀 흘려 모든 걸 바쳤던 이 땅의 노동자와 브레인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다. 이 전 회장을 통해 그들을 위해 기꺼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기업인의 모습을 보고 싶다.
삼성을 세계적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은 당사자로서 지금부터라도 대한민국 최고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현하는 기업과 기업인이 되는 건 어떨까 싶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존경받는 부자가 있음을 삼성 브랜드에 실어 세계만방에 알릴 수 있는 적임자가 될 의향은 없는 건지 궁금하다.
그리하여 그가 이 세상을 마감할 때 모든 국민들이 정말 가까운 형제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듯 진심으로 애도하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볼 수는 없을까?
말하다 보니 그의 눈물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지만 모든 게 진작에 이뤄졌어야 할 기본적 사항에 불과하다.
세계적인 위상을 보이고 있는 삼성의 오늘 날을 인정하는 데 별다른 이견은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삼성이나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한 평판까지 좋은 건 아니다.
엘리트주의, 비인간적 기업, 삼성공화국.... 삼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용어들이 넘친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인정은 받되 존경은 받지 못하는 기업과 기업인’의 대표적 주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이것이 삼성과 이건희 전회장이 당면 과제로 삼아 풀어내야 할 화두가 아닐까 생각한다.
빌 게이츠나 워렌버핏 등 국민들로부터 자발적 존경을 받고 있는 미국 기업인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주야 말로 그 나라의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다.
그저 부러울 뿐이다.
포탈 혐의로 법정에 서거나 굴비 엮이듯 줄줄이 감옥으로 향하는 우리나라 재벌의 현주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니 하는 말이다(이 점에 관해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얼마 전의 나도 아는(가까운 교분은 아니었지만 스탠포드에서 동문수학했던) 삼성전자 부사장의 자살사건은 삼성의 음지를 조명하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무노조를 자랑하고 있지만 아직도 열악한 작업환경의 피해자가 된 삼성 노동자들이 많이 있다(삼성이 최고의 기업이라고 해도 최고 경영자는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이다).
불법 자금을 동원한 불법로비 등 임시변통식 입막음으로 처리하긴 했지만 제2, 제3의 ‘김용철’로 이어지는 내부고발이 없으란 보장이 없다.
그런걸 생각하면 밤에 편히 발 뻗고 잘 수 있을까 싶다.
이 전 회장이 선친의 유업 중에서 '정직'을 대표적 화두로 꼽았다고 들었다.
정직이란건 이 전 회장처럼 많이 갖고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말하기에는 어째 어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존차원의 사람들이 듣기에는 관념놀이에 지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생사’와 직결된 상황에서 ‘정직해야 할 일상을 언급한다는 자체가 모순이 될 수도 있다.
연못에 던진 일상적인 돌팔매가 개구리 입장에서는 거의 목숨을 건 사투가 되는 것과 같은 의미다.
그가 주문한 대로 ‘변화무쌍한 21세기를 견디는 방법’도 다 좋다.
국내와 세계 모두 기업뿐 아니라 교육, 문화 모든 분야에서 항상 자기 위치를 쥐어야 21세기를 견뎌낼 수 있고 이를 위해 우리 사회 각 분야가 정신을 차려야한다는 그의 충고를 존중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국제무대에서 흐름을 놓치지 말고 밀어붙여야 한다는 의미라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나 시급한 것은 황제의 눈물이 기존의 삼성 관행을 바꾸는 기폭제가 되는 일이다.
필경 모두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전환점을 만들어 낼 힘있는 눈물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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