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김유진 / / 기사승인 : 2010-05-18 12:4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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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종 경민대학 총장 (홍문종 경민대학 총장)

1974년 8월 15일은 우리나라 최초로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된 날이다.

하도 오래 전 일이라 가물가물해졌지만 당시 신기하고 놀라운 기분으로 첫 운행에 들어간 1호선을 시승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외국에서 생활하고 귀국해서는 주로 자동차를 이용하다 보니 정작 1호선을 이용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선거 때 출근길 전철역 앞에서 유세를 하거나 명함을 뿌리는 정도가 그나마 1호선과의 인연을 상기시키는 기억인 것 같다.

오늘 서울에 나가 좋은 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귀가길엔 전철을 탔다. 잠실에서 의정부까지 오는 동안 3번이나 (9호선 타고 고속터미널역, 7호선 타고 도봉산역, 그리고 1호선 타고 의정부역까지) 노선을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수확이 없었던 건 아니다.

나름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지하철 안 풍경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상받은 기분이다.

이제 막 시험이라도 끝낸 듯 몹시 지쳐 보이는 학생, 역시나 비슷하게 피로에 절어있는 젊은 직장인, 연애 삼매경에 빠져있는 커플, 등산으로 체력과 부부애를 동시에 다지고 귀가하는 것처럼 보이는 중년부부, 뭔가 수심 가득한 얼굴로 생활고의 고통을 온 몸으로 내뿜는 초로의 남자, 그와 비슷한 분위기의 남녀 무리들, 무슨 술을 그리 많이 먹었는지 계속 토해대는 아가씨 등 다양한 군상들이 저마다의 표정을 가지고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은 마치 대한민국의 축소된 단면을 보는 듯 했다.

나는 오늘에서야 휴대폰에 왜 DMB가 달려있어야 하는지 화면의 크기가 문제가 되는지 알았다. 끊임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며 문자 교신에 빠져있는 학생을 보면서 휴대폰 문자메시지 기능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다.

전철이 역에 정차할 때마다 승객들의 표정이 다양하게 변하는 모습 역시 흥미로웠다.

어느 역에선가는 내리는 사람이 많아 좌석에 앉을 태세를 하며 순식간에 표정이 밝아지는 가하면 또 어느 역에선가는 갈아탈 전철을 놓치지 않기 위해 뛸 준비로 결연한 각오가 담긴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나 역시 그들 틈에 끼여 열심히 뛴 덕분에 막차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중 잠자다 내릴 역을 지나쳐 황급히 전철을 내리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안쓰러움을 자아내게 했다.

강남에서 의정부까지 교통비 1500원으로 참으로 많은 것을 얻은 귀가길이었다. 생존의 치열한 열기를 감지할 수 있는 현장체험을 한 기분이라고나 할까.

우리 지하철이 미국이나 일본 지하철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는 (중국에 가서 지하철을 타봤는데 우리 것에 비하면 한참 수준이 떨어져 보였다) 생각에 흐뭇함마저 느낄 수 있었다.

한나라의 척도를 문화나 예술 등 한 두가지 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지하철을 기준으로 한다면 어느 정도 희망의 가능성을 품어도 좋을 듯 싶었다.

그동안 우리가 달려온 먼 길을 생각할 때 이제는 정말 세계를 주름잡을 중요한 모멘텀을 만들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가 더욱 더 정성을 모아 제대로 한번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불끈 생기는 것 같았다.

의정부역에서 내려 걷다가 잘 준비를 하면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노숙자들과 마주쳤다. 편치 않은 그 모습들이 걸어오는 내내 눈에 밟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정치를 했던 사람으로서 정말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고 편견 없는 세상은 신기루에 불과한 것인가에 대해 책무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당면한 현안으로 받아들여야 할 아픈 현실이었다.

전철역 주변을 도배하고 있는 시장 후보들의 현수막과 시ㆍ도의원 후보자들의 흩날리는 명함의 퍼레이드를 지나치면서 과연 어느 후보가 이 같은 현실을 잘 해결하고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일까 생각했다.

지역과 나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적임자를 선택하기 위해선 이번 선거에 좀 더 공정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특별한 종교나 지역, 출신 학교 등의 성분에 대한 차별로 ‘인물’을 놓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오늘의 지하철 대장정(?)은 해피엔딩으로 종결지으려 한다.

서민의 애환이 서린 그 곳에서 희망의 근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추억과 희망과 걱정이 교차되는 가운데 행복한 여운이 가슴 속을 파고드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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