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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 문화평론가)
서태지의 부인이 이지아이고, 이지아의 남편이 서태지였다는 소식에 대한민국이 들썩였다. 그 들썩임은 이른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게 했다. 충격적이라는 말이 회자된 것은 두 사람의 연관성을 전혀 짐작도 못했다는 점도 있지만 최근 정우성과 이지아의 열애설이 불거진 터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결혼사실에 관해 비밀이 문제라고 한다. 왜 그 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았냐는 것이다. 공인이라면 그 같은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논리가 다시 작용하고 있다. 많이 익숙한 논리다. 익숙한 논리에 익숙한 논리로 대응하면, 사생활과 개인 프라이버시는 보장 받아야 한다. 국민의 알권리를 말하기도 하는데, 알 권리와 알릴 의무는 모순이다.
그들은 대중예술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격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판단은 그들 것이다. 사회질서에 반하거나 범법의 당사자가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개인의 사생활에 간섭할 수 없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우선이다. 오히려 지금은 잘못된 스타마케팅과 연예저널리즘이 그들의 죄를 만들고 있는 형국이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여론으로 정당화 되고 있다.
과거 많은 경우 사람들은 스타의 부인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에는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을 뿐이다. 오히려 그러한 사생활을 마케팅차원에서 적극 활용하는 기획사나 스타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은 불과 몇년 안되었다.
이지아가 스스로 서태지의 아내라고 했다면 더 비난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서태지 아내라는 명목으로 더 인기를 얻으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것이다. 더구나 이지아는 <태왕사신기>를 통해서 데뷔했다. 서태지보다도 늦었다. 그것도 10여년이다. 만약 서태지의 아내라는 사실을 밝혔다면 발탁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누구의 아내이기 때문에 혹은 결혼했기 때문에 안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선입견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이지아의 경우, 그러한 선입견이 없었기 때문에 국내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 만약 사생활이 유지가 되지 않았다면 그녀의 활동으로 팬들이 얻은 효과들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태지의 아내였다는 것을 밝혔다면 수용자들에게 손해였다. 적어도 이지아 팬들에게는 말이다
서태지의 경우를 돌아보면, 서태지는 자신의 신상에 대해서 털어놓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서태지에 대한 정보는 그만큼 적을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코드를 볼 때 저항적 기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아내가 누구인지 밝힐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것이 정상이 아닐까. 이순재의 아내가 누구인지, 김수미의 남편이 누구인지 우리는 잘 모른다.
그런데 그의 상품성 유지 차원에서 밝힐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아우라가 깨지는 일이다. 기획매니지먼트의 대가인 서태지 스타일상 이해못할 법도 아니다. 이지아가 최근까지 비밀을 지킨 것은 서태지의 상품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겠다. 영원히 미혼으로 젊음의 아이콘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미혼 이미지를 통해 이득을 취하거나 했다면, 그것은 사기와 기만에 해당할 것이다. 팬들에게 실망과ㅡ분노가 있을 수 있기에 숨긴 것이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이는 팬들에게 사과해야 할 점이다.
정우성과 열애설을 낳은 이지아의 행동이 불손하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혼의 와중이라면 그것이 문제일까. 그럼 처녀가 아니라서 문제인가.
그들의 결혼-이혼에 관한 소식은 의외이기는 하지만 모든 매체에 이렇게 도배할만한 일인가.
우리가 그렇게 그들에 관심을 갖는 것은 돈 때문이 아닐까. 앞으로 계속될 이혼에 관한 재판이 관심되는 것이고 그 위자료 액수 때문일 것이다. 위자료에 대한 프레임은 이지아에게 불리한 담론으로 이어지게 한다. '혼테크'라는 말이 연상될 만도 하다. 서태지 팬들은 여기에 분노한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를 모르는 바에야 쉽게 판단할 수는 없는 사안이다. 적어도 위자료 요구는 정당하다. 오랜 기간과 나이, 그간의 정황을 보면 위자료를 바라고 결혼했다는 시각이나 뜯어낸다는 시각은 타당하지 않을 것이다. 정당한지는 법원이 판단 할 문제이다.
정말 불행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이혼율 증가에 베르테르 효과를 줄 지 여부이다. 적어도 '그들의 결혼 생활이 왜 깨졌나'가 아니라 '잘 될 수 있었던 방법'이라는 대안을 모색하는 지적이 많았어야 한다. 이는 앞으로 계속 있게 될 다른 스타들의 이혼 관련 보도에 요구되는 내용이다. 적어도 이혼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며 자녀들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스타 혹은 공인의 사생활 보호는 바로 우리들의 사생활 보호이다. 아무리 개인 홍보와 마케팅 시대이지만, 뜻하지 않게 그러한 홍보와 마케팅이 당사자들 아니 우리들의 인권-프라이버시를 훼손할 수 있다. 서태지와 이지아에 관한 정보를 순식간에 전국민이 안다는 사실은 한편 인터넷의 위력을 인식케 하지만 대한민국이 숨막히는 감옥같은 사회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서태지가 미국에서 주로 있는 이유를 알 수 있겠다. 수많은 공인-스타들이 미국에서 아니 외국에서 거주하는 것은 결국 숨막히는 사생활 노출과 루머의 그물에서 벗어나려는 도피와 은거가 되는 셈이다.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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