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을 정말로 하려면

안은영 / / 기사승인 : 2011-06-15 14:37:00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김근식 경남대 정치학 교수
(김근식 경남대 정치학 교수)

대망신이다. 북한과의 비밀접촉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이명박 정부는 대내외적으로 망신살이 뻗쳤다. 겉으로는 원칙 고수와 의연함 기다림을 내세워 큰소리치더니 속으로는 북을 몰래 만나 정상회담을 애원했다면 무엇보다 보수 진영이 용납하기 힘들다. 남북관계 돌파구를 위해 정상회담을 주문했던 진보 진영 역시 현 정부의 대책 없는 아마추어리즘에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모든 남북관계를 끊고 대북제재와 압박에 올인하는 이명박 정부가 물밑에서 비밀리에 정상회담을 타진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외국에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평가다. 접근 과정과 진행 과정 그리고 결과 도출에서 일관되게 실패작으로 평가되는 남북 비밀회담을 해놓고도 현 정부는 지난 달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스스로 대북 접촉을 확인하고 공개하는 믿지 못할 해프닝까지 벌이고 말았다. 별무성과의 망신살에 더하여 북한에게 공개할 빌미마저 제공해버린 셈이다.

이번 베이징 접촉 폭로로 인해 이제 남북관계는 갈 데까지 가버리고 말았다. 공개해서는 안 될 내밀한 내용까지 밝힌 북한은 향후 이명박 정부와의 대화여지를 스스로 봉쇄할 작정에서 선택한 것이었다. 남쪽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고 다른 길을 모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직후 일련의 대남 강경대응의 맥락에서 이번 폭로가 나온 점도 이명박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은 북중연대를 통해 버티겠다는 전략적 판단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안팎으로 대망신을 당한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게 다시 대화 접근을 하는 것도 넌센스다. 이로써 이명박 정부하의 남북대화는 가능성 제로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사실 이번 접촉에 대해 객관적 사실을 모두 확인하기는 아직 힘들다. 남북 당국자가 베이징에서 만났다는 것 외에는 북의 주장에 대해 남측이 한사코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북이 녹취록 공개를 거론하며 압박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회담 내용과 정상회담 요구 여부 및 돈봉투 수수 사실 등은 진실게임에 놓여 있을 뿐이다. 그러나 팩트 여부를 떠나 이번 접촉 과정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접근과 인식이 얼마나 한심하고 유치한 것인지를 재삼 확인해주는 명백한 증거가 되고 있다.

무릇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면 필요조건들과 충분조건들이 요구된다. 굳이 회담 성사가 아니라 정상회담 논의만을 위해서도 최소한의 요건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최소한의 진정성과 요건 고려도 없이 무작정 뛰어들었다. 우선 남북간에 정상회담 논의를 위해서는 ‘신뢰’라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안된다.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도 없는 상태에서 양 정상의 만남을 논의하는 것은 처음부터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의 진정성을 믿지 못하고 주고받는 말을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의 논의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 된다.

김대중 정부의 정상회담 성사 역시 오랜 기간 동안 양측의 신뢰가 축적되고 확인되면서 가능한 것이었다. 출범 초기 대북 비료지원을 위한 베이징 차관회담이 결국 결렬되었지만 흡수통일 배제와 화해협력 추진이라는 남측 당국의 일관된 의지는 북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 금강산 관광을 시작하고 서해교전에서도 대북협력을 중단하지 않고 북미 대화와 북미관계 정상화를 앞장서서 지지하고 도와주는 김대중 정부의 기조를 보면서 북은 정상회담의 의지를 믿을 수 있었다. 정상회담 성사 직전 김대중 대통령이 발표한 베를린 선언은 그래서 정상회담 의지를 믿게 하는 진정성 있는 신뢰로 받아들여졌다.

노무현 정부 역시 오랜 핵문제 진통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 지속이라는 일관된 정책을 펼침으로써 정상회담 논의를 위한 신뢰형성이 가능했다. 2차 핵위기 이후 6자회담의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는 매년 쌀과 비료 지원을 계속했다. 북핵과 남북관계 병행론을 내세워 북핵 상황 악화에도 불구하고 경제협력과 교류확대는 지속해나갔다. 결국 2.13 합의로 핵문제가 진전되고 나서야 남북의 정상회담 논의는 급물살을 탔고 급기야 성사되었다. 북핵이라는 어려운 정세에서도 남북의 신뢰의 끈을 놓지 않음으로써 정상회담 논의가 결실을 맺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남북관계는 신뢰를 논할 수 없는 처지이다. 이미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는 남북 간에 최소한의 신뢰도 남아 있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정상회담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상대방을 믿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먼저 형성되어야 하는 데도 이에 대해서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 대북 쌀지원 요구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가축용 사료로 쓸지언정 북에는 줄 수 없다는 완고한 입장을 견지했다. 북한의 대화 제의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시종일관 북이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내세워 북의 완전굴복만을 요구했다. 카터 전대통령의 방북 결과를 이명박 정부는 귀담아 듣기는커녕 제3자라며 홀대하고 폄하했다. 심지어 대북 식량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미국과 국제기구의 실태조사에 대해서도 이명박 정부는 편향된 분석이라며 이의를 제기하고 찬물을 끼얹었다. 남북이 비밀접촉을 하는 순간까지도 남과 북은 단 1%의 상호 신뢰 없이 얼굴을 마주한 셈이다. 여기서 어떻게 정상회담 논의가 진정성 있게 진행될 수 있겠는가?

이처럼 최소한의 신뢰도 없이 무작정 만나 정상회담 논의를 했다면 이는 둘 중 하나가 분명하다. 처음부터 정상회담 논의는 관심 밖이었고 천안함과 연평도 사과를 얻어내기 위해 북을 회유하는 카드로서 정상회담 이야기를 꺼냈을 가능성이다. 포탄이 오고가는 남북관계에서 연이어 세차례나 정상회담을 하자는 기상천외한 발상 자체가 실제 정상회담을 할 생각도 없었음을 짐작케 한다. 만의 하나 정말로 정상회담을 논의하려고 만난 것이라면 이는 북한을 만날 준비도 협상을 위한 지식도 없는 무지몽매함의 극치이다. 적어도 이전 정상회담 준비과정과 협상과정을 한번이라도 차분하게 들여다봤다면 이런 식의 접근은 있을 수 없다. 돈봉투를 건네고 정상회담 언급을 좀 하면 북한이 옳다구나 덥석 받을 줄 알았다면 이 자체가 엠비식의 건설회사 협상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입찰 담합이나 하청회사와의 계약에서 겉으로는 세게 나가고 밤에 몰래 만나 돈봉투 건네고 회유하면 모든 게 일사천리라는 생각을 지금 대명천지에 그것도 북한을 상대로 하고 있는 거라면 정말 코끼리도 웃을 일이다. 접촉 공개 이후 통일부의 미숙한 대응으로 지금은 북이 녹취록 공개까지 거론하고 있다. 만약 움직일 수 없는 증거에 의해 북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역사상 처음으로 북한에 의해 통일부 장관이 교체되는 참담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폴리뉴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안은영 안은영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