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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 문화평론가)
한예슬이 촬영 약속을 지키지 않아 드라마의 방영에 차질을 빚었다. 이를 통해 드러난 것은 진실이나 해법이 아니라 각 주체들의 피해의식이었다. 이를 통해 인권의 사각지대를 여실히 확인시켰다.
한예슬은 자신을 배려하지 않은 제작 시스템과 프로세스에 대한 항의를 약속이행거부로 응대했다. 자신이 피해자임을 내세워 상대에게 피해를 주었다. 이로써 KBS측은 한예슬의 약속 이행거부를 강력하게 성토했다. 이는 배우들의 자의적인 행동으로 제작 일정과 방송수행에 피해를 받아온 것에 대한 반응일 것이다. 역시 자신들이 피해자임을 강조했다.
이들만이 아니다. 광고주들이나 광고기획사들은 한예슬의 이미지 훼손으로 인한 광고 효과 감소에 대한 손해를 성토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오만하고 방자한 연예인 한예슬에 대한 격노를 뿜어내고 있다. 역시 한예슬에게 간접적으로 우롱에 따른 피해를 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시청자의 시각에서는 어쨌든 드라마 시청을 못했으니 피해를 본 셈이다. 사태가 일어났는데 모두 자신의 피해를 주장하고 있고 정작 피해를 주었다는 사람은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수 있는 것일까. 모두 자신의 책임을 못느끼거나 전가하고 있는 것인가. 그럼 각 주체나 개인들의 악성에 대해서 원인을 찾고 그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일까.
시스템의 문제라고 볼수 있다. 이렇게 시스템을 언급 하면 대개 제작 시스템을 언급하는 것을 연상할수 있다. 대개 쪽대본이 난무하는 급조의 드라마 제작 환경 말이다. 그러나 제작진은 그러한 급조환경은 없었으며 다른 드라마 환경과는 다른점이 없음을 말한다.
여기에는 각 주체들의 몇가지 인지적 착오가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기존의 영상 제작 시스템의 모순을 심화시킨다.
일단 한예슬이 만약 신인이었다면 이러한 제작 프로세스의 고통에 대해서 그러한 방식으로 항의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3~4일간의 모진 강행군의 드라마 촬영임에도 바짝 임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한예슬은 신인이 아니다. 이미 인지도를 확보한 주연배우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
자신을 그런식으로 여전히 대하는 환경에 대해 화가 났을 수도 있다. 이제 유명인이 아닌가. 그런데 그 드라마에는 이순재, 이덕화를 비롯한 역전 노장들이 있었고 그들도 일정을 감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예슬은 오만해보인다. 대선배들도 그렇게 하지 않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거꾸로 이미 이런 제작환경에 둔감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문제시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러한 환경을 감내하고 묵묵부답이었기 때문에 여지까지 살아남았는지도 모른다.
분명 잘못된 것은 이순재가 말했듯이 초인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제작관행이다. 이때문에 제작진이 다른 드라마와 다르게 고통스러운 제작프로세스는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옳다고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예슬측이 주장하는 고통도 이와 같은 맥락안에 있었다.
수많은 신인들이 톱스타가 되면 무리한 고통의 제작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며 이른바 뜰 때까지는 감내하려 한다. 하지만 유명해져도 여전히 환경은 달라지지 않는다. 더구나 그런 프로세스에서 저항을 하면 매장을 당하거나 영원히 회사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한예슬은 철이 없는 게 맞다. 하지만 한예슬이 그 정도라면 다른 신인급 여배우들은 어떨까 아니 조연이나 엑스트라는 어떨지 미루어 짐작하지 않아도 명확하다.
배우들이 강행군을 통해 고통을 감내 즉 피와 뼈를 갈아 만드는 것이 한국 드라마 제작의 현실이다. 한류현상이 놀랍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한예슬보다 더 힘들게 제작을 하고 있는 것이 다른 배우들, 그리고 스텝들이다. 그들에게 한예슬의 행동은 투정에 불과해 보인다. 어처구니 없을 지도 모른다. ´고생을 뭘 한다고, 좀 고생하고 돈 많이 받는 게´하는 심리가 있겠다. 하지만 이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개인 스타 콘텐츠의 독보성에 따른 가치 산정이며 문제는 시스템의 모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불합리한 구조에서 그러한 고통을 인내하며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러한 인내는 오히려 시스템의 모순을 악화시킨다. 현실의 모순은 분명 존재한 것이 중요하다. 그 모순의 고통과 피해를 누가 더 많이 당했는가에 순위를 매기는 심리는 더욱 타당한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무조건 한예슬만을 공격하고 모든 책임전가를 하면서 자신들의 이득만을 챙기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더구나 배우들의 기선을 제압하고 기존 제작 시스템의 모순을 강행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오늘도 수많은 이들의 피와 뼈를 갈아 만드는 드라마는 수많은 제작 인력들을 말라죽이고 있다. 무리한 촬영강행군이 당연시되는 인식들은 필시 결과를 위해서라면 무슨 과정도 합리화되는 폭력의 사회를 잉태시킨다.
인권은 생각조차 할수 없으며 이는 암묵적 동의로 서로를 목죄고 있다. 그리고 소리 없이 죽어간다. 최소한의 인권이라도 보장되는 제도적 대안의 모색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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