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품격과 기자회견

이기명 / / 기사승인 : 2012-02-27 15: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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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명 시사평론가

(이기명 시사평론가) 오래됐지만 꼬맹이들 데리고 서울대공원에 간 적이 있다. 이곳에 동물원이 있다. 갇혀 있는 동물들은 미칠 노릇이지만 사람들은 동물들을 보면서 즐거워한다.

동물들도 가지가지다. 원숭이란 놈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촐랑대는 게 영 ‘촐랑이’다. 그런가 하면 백수의 왕이라는 사자는 다르다. 애들이 떠들어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의젓하다. 갇혀 있는 신세가 얼마나 속이 상하랴만 품위를 지킨다. 품격이 높다.

이명박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했다. 공식 기자회견으로는 임기 중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특별한 일이 있기 전에는 말이다. 국민들은 궁금했을 것이다.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할까. 할 말이 뭐가 있을까. 얼마나 진솔하게 사과를 할 것인가. 현실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이런저런 예상들이 많았다. 국민이 빤히 다 알고 있는 경제에 대해서 진솔하게 사과를 하지 않을까. 연일 터지고 있는 측근비리에 대해 깊이 머리 숙여 사과를 하지 않을까. 가장 하기 싫은 얘기겠지만 4대강 사업이나 한미 FTA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을 할 것이다. 등등. 기대가 너무 큰가.

과연 국민들은 기자회견 생중계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릎을 치면서 감탄을 했을까. 아니면 차마 공개하지 못한 막말을 토해냈을까. 감탄을 하든 욕을 하든 각자 자유다. 시비 걸 필요가 없다. 지금은 욕만 해도 잡아가는 박정희 시대가 아니다.

기자회견을 보면서 속으로 감탄한 것은 ‘정말 이명박 대통령이 대단한 분’이라는 인식의 재확인이었다. 또 한 가지는 정말 몰라서 저러는 것일까. 알면서도 그러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다. 가슴이 아프도록 조여 온다.

사과란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사과는 인간만이 가진 아름다운 모습이다. 죽을죄를 지었어도 진실로 사과를 하면 용서를 받는다고 한다. 사과는 부끄러운 일인가. 사과는 용기다. 그래서 양심선언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과를 했다. 최측근 비리에 대해서 간단히 처리했다. 다 아는 사실이니 언급하지 않는다. 좌우간 여러 가지 의미에서 역시 대단한 용기를 소유한 이명박 대통령이다. 보통사람과는 확실하게 다른 심장조직을 가진 모양이다.

지금 기를 쓰고 쉬쉬 감추려는 4대강 이라든지 한미 FTA 등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시 대통령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국민의 예상과는 한치도 어긋나지 않는 대답이 나왔다.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기지회견 중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이 있었다. 총 기자회견에서 4분의1 가량인 13분을 쏟아 부은 것은 야당에 대한 비판이다.

물론 대통령도 인간인지라 기분 나쁜 일이 있고 욕도 하고 싶은 때가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신이 아닌 다음에야 인간적인 모습이 오히려 친근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때도 고려해야 하고 장소도 생각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품격이다.

노무현, 한명숙, 이해찬, 유시민이 다 등장했다. 물론 이들이 금기의 이름이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새해 첫 번째 기자회견에서 13분이나 할애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국회 속기록까지 등장한 13분 동안 국민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시 청와대 대변인이 저기 서 있는 것은 아닌가 착각하지는 않았을까. 품격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을 했다.

대통령이 공식 기자회견에서 야당대표를 저렇게 거론한 것은 처음이다. 스스로 대변인 자리로 내려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품격이 자주 논란이 된다. 국격 역시 같다. 국격이란 나라의 품격이다. 국민들이 대통령의 행동을 보면서 국격을 떠올리는 것은 대통령의 자리가 바로 국격과 직결이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중에 떠돌아다니는 대통령의 독도관련 발언이나 일본 천황 앞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 부시 대통령과 골프카터를 타고 운전하면서 희색이 만면한 모습들은 나라의 국격을 생각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다시 말하면 대통령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국격과 관련이 있다는 얘기다.

솔직히 말해서 이명박 대통령이 사면초가다. 새누리당 공천 예비신청자들의 홍보물에는 이명박이란 이름 석자가 보이지를 않는다고 한다. 여론조사는 거론할 필요도 없다. 예단은 금물이라지만 자의든 타의든 탈당도 코앞에 닥쳐 있다는 것이다.

4·11 총선에서 새누리가 참패를 하리라는 것은 새누리 자신도 인정을 한다. 누구의 탓이냐고 물으면 대통령 탓이라고 한다. 사실인가. 공동책임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아무리 안간힘을 쓰며 강변을 해도 떠보지도 못하고 주저앉은 747이나 가계 빚이 234조라는 현실 앞에서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나타나지 말아야 할 정권이 나왔다고 한탄을 해도 국민들이 선택한 정권이다. 사기를 당했다고 아무리 소리를 쳐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정권과 국민이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칼럼을 쓰면서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은 이명박 대통령이 왜 기자회견을 했느냐는 것이다. 기자들의 질문이나 대통령의 대답은 미리 다 알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대통령이 선거운동을 했다고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강력히 비난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라면 탄핵감이다.

“다음 정부에 부담을 주는 일은 하지 않겠다. 오늘의 젊은 세대에게 짐을 지우는 일도 하지 않겠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 말이다.

품격은 스스로 만들어 낸다. 아니 스스로 지니고 다닌다. 선인들이 만한 ‘지 사랑은 지가 지니고 다닌다’라는 말과 같다.

칼럼 시작 때 동물원 얘기를 했다. 동물들도 품격이 있다. 하물며 인간임에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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