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신봉승 극작가) TV역사드라마 「해를 품은 달」이 시청률 40%를 넘어서면서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모으자 또 다른 창작역사드라마의 바람을 일으킬 모양이다. 다시 말하면 임금도 왕비도 가상이니까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나 시대도 가상일 수밖에 없으니 ‘고증’이라는 또 다른 속박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안이한 발상은 위험천만한 생각이다.
물론 「해를 품은 달」과 같은 가상으로 시대와 인물을 설정한 창작역사드라마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물경 40여년 전에 필자도 옛 TBC-TV에 역사와 아무 상관이 없는 창작 역사드라마 「연화」를 쓴 경험이 있다.
그때도 시청률이 폭발적이어서 드라마의 무대가 되었던 양주 회암사가 관광지로 떠올랐고, 소실된 대법당을 중건하는데 출연했던 탤런트들인 강부자, 박병호, 고은아, 김창숙 등이 앞장섰던 일은 지금도 새삼스럽다.
시대나 인물을 모두 창작으로 설정하면 스토리도 작가의 자유분방한 이미지에 따라 전개되게 마련이다. 시간설정, 인물설정은 작가의 고유권한이지만, 풍속과 법도까지 해체 될 수가 없다는 점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아무리 창작역사드라마라 하더라도 임금과 왕비, 그리고 왕자나 공주, 임금과 신하의 행동거지는 옛 범절과 법도에 따라야 한다. 창작역사드라마임을 빙자하여 왕실의 법도나 반가의 관습까지 무너뜨리게 되면 이미 역사드라마의 범주를 벗어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역사드라마가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은 역사적 사실의 나열 보다 우리 민족의 숭고하고 아름다웠던 삶(법도)을 재현하여 오늘을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귀감으로 삼게 하는 데 있다.
이 엄연한 사실을 외면하고 많은 언론(젊은 기자)들이 해괴한 논리를 적용하여 선량한 독자들을 우롱하고 있고, 방송국의 관계자나 일부작가들도 마치 새로운 양식의 드라마가 탄생하고 있다는 식으로 착각하고, 동조하는 행태는 기본과 기초를 무시하는 우리 사회에 망국적인 풍조에 물들어가는 것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다.
창작역사드라마를 타임슬립(Time Slip)이라는 용어에 적용하여 마치 현대와 고대를 자유롭게 내왕하는 드라마라는 식으로 정의하려는 것은 이만저만한 무지가 아니다.
‘타임슬립’을 직역하면 <시간이 미끄러진다>’는 뜻이다. 이른바 SF소설이나 만화, 혹은 드라마에서 현실의 시공간을 초월해 과거나 미래로 자유롭게 시간여행을 하는 설정을 창작역사드라마에 적용하는 것은 망발 중에서도 이만저만한 망발이 아니다.
우리의 역사드라마를 마치 「반지의 제왕」이나 「아바타」와 같은 형식으로 몰고 가고자 한다면 그것은 이미 역사드라마의 범주를 벗어났다는 점은 삼척동자도 알 일인데, 그렇게 기획되고 제작되는 역사드라마가 무려 여섯 편이나 된다니 우리는 미구에 모든 텔레비전 역사드라마가 황당한 시류에 휩쓸리는 광경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참으로 난감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 땅에서 방송되는 모든 역사드라마가 「해를 품은 달」과 같은 패턴이 되고, 더 나가서 「반지의 제왕」이나, 「아바타」와 같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당연히 국민적인 심판을 받게 되겠지만, 이미 저질러진 역사드라마의 불신을 수습하는 데는 그보다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기초를 소홀히 하고, 기본을 무시하는 풍조가 우리 사회에 만연되고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 대표적인 곳이 대한민국 국회다.
국회의원을 뽑아서 국회로 보낸 것은 국가의 미래를 경영하라는 뜻일 것인데도 사욕만 득실거리고, 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일이라면 국회에서의 발언과 이익단체에서의 발언이 아주 상반되는 이중의 잣대로 사안을 살피는 등 자신들을 뽑아 준 국민들과의 신의를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치고, 명색이 정부라는 곳에서도 기초를 무시하고 기본이 흔들리는 것을 볼썽사납게 보아 온 터이다.
방송되는 역사드라마의 모양새가 그런 지경에 이르면 시청자의 불신과 외면을 받게 된다. 그 불신과 외면을 정상화하는 일이 시류에 영합하는 일보다 몇 십 배 더 어렵다는 사실을 가슴깊이 새길 일이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