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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동성서침례교회 김우생 목사
존 뉴톤(1725~1807)은 11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소유한 노예선에서 선원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맨 밑바닥에 처한 생활을 해왔었습니다. 그러다가 1748년 3월10일 그는 배를 타고 아프리카에서 영국으로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성난 폭풍우가 배를 강타했습니다. 심각한 위험에 처한 뉴톤은 이때의 자신을 요나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영적인 깊은 자각을 체험하였는데 그는 이날을 ‘영적 출생의 날’이라 불렀습니다. 그리하여 1754년 그는 자신을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 고백하며 점차로 자신의 모든 삶을 그리스도에게 헌신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침례교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설교와 주제는 ‘주의 놀라운 은혜’였었습니다. 1779년 그는 그를 구원하고 그를 쓰시며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그의 자서전 같은 노래를 작시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감격해서 부르는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 사랑하는 여러분과 함께 놀라운 은혜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은혜의 보다 넓은 의미로서 은혜가 우리 삶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 은혜의 메시지를 우리 삶 속에 받아들이면 우리 생애에 변화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1. 태도의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부정적인 태도에서 긍정적인 태도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2. 인간관계의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의심하고 까다롭고 강경한 태도에서 이해하며 관용하고 용납하는 태도로 바뀔 것입니다.
3. 주님께 대한 느낌이 달라질 것입니다. 경원하고 두렵던 주님이, “멀리 계신 당신”과 같은 주님께 친근감을 지니게 되며 사랑과 존경을 드리며 주님을 기뻐하는 삶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4. 삶의 폭이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긴장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그런 삶을 알고 계십니다. 은혜는 우리 마음의 긴장을 풀게 하고 자유하게 합니다. 어떤 일에 매여 전혀 쉬지 못하고 때로는 휴가계획도 못 세우며 휴가를 해도 즐기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족 간에 긴장관계, 타인과 긴장관계, 어떤 일 때문에 긴장상태, 문자 그대로 위장장애 위궤양을 일으키는 삶이 되고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에 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은혜의 메시지는 그러한 여러분과 저를 그런 것으로부터 구할 것입니다.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더욱 매력적이 되며 아름답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은혜가 넘치면 우리를 경원하던 사람까지도 우리 주위에 가까이 오게 될 것입니다.
닥터 칼 메닝거의 저서 ‘삶의 균형’(바이틀 밸런스)이란 책에서 부정적인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성격의 사람은 그의 삶이 부정적이며 모든 것을 아니오! 라고 말합니다. 메닝거 박사는 이런 사람을 ‘문제가 많은 환자’(트라블드 페이션트스)라고 부릅니다. 무슨 목적이든지, 무엇을 위해서이든지, 후히 후원하거나 지지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잘못되고 있다고 느낍니다. 살아가는 즐거움이 없고 주는 즐거움도 없습니다. 항상 경직되어 있고 만성적인 불행한 사람의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쓴 뿌리가 있으며 불안해 하고 종종 자살하고자 하는 충동까지 갖게 되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는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은혜는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우리의 삶을 빛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얼굴을 변화시킵니다. 우리의 얼굴은 변화가 필요합니다. 혹시 우리 얼굴표정이 항상 ‘아니오’라고 말하고 있지나 않는지 한번 바라보아야 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항상 아니라고 말하는 그런 표정을 지니는 부모 슬하에서 자랐습니까? 항상 아니라고 말하는 표정을 지닌 배우자와 살고 있습니까? 항상 아니라는 표정을 지닌 교수 밑에서 배웠습니까? 항상 아니라는 표정을 지닌 상사 밑에서 일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네’라고 하는 부모, 교수, 상사와 있는 사람이 부러울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1~3). 위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요 전능하신 창조주의 하나님이심을 또한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바로 그 말씀이 하나님이셨습니다. 그가 육신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고 거하셨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가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종교는 율법이고 계명, 규례, 의식, 명령과 심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하지 말지니!’... 속박과 강제 ‘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들어 왔던 그 당시 그 세대였습니다. 그런데 여기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는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서 은혜와 진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르게 되었다, 충만하게 되었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속 이어서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 1:16~1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탕아이었던 사람이 신학자가 되고난 후에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는가?”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을 때 종교와 역사를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그러하였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율법은 속박과 명령과 강제였다라면 은혜는 자유하게 하는 것이요 은혜는 자원하여 순종하게 하는 것이며 은혜는 감사가 우러나게 하고 사랑하게 하며 평안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은혜의 영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가 있으면 우리의 삶이 변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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