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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교회 인명진 목사
우리가 세상을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렵습니다. 누가 나를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 내 문제를 속 시원히 해결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즈음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들은 저마다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겠으니 믿고 뽑아달라고 합니다. 각 정당마다 그럴싸한 정책과 공약을 내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국민들 중에 그들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고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또 국민을 속이려는 사탕발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들은 정치인들이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 것이다, 우리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체념한 지 오래입니다.
그렇다고 딱히 누가 우리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나를 진정으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데 우리의 답답함이 있습니다. 물론 나를 진정으로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부모가 나를 도와주고 싶고, 아내가 남편이 자녀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에게 진정으로 나를 도와줄 힘이 있는가 하는 것에 우리의 고민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런 문제로 고민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약 이천년 전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즈음 당시의 상황은 참으로 기가 막힌 답답한 절망의 상황이었습니다.
이들은 언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할 메시아를 보내 줄 것인가 하늘만 바라보며 탄식과 한숨 속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그만 이상한 징조가 보여도 메시아가 아닐까 백성들은 흥분했습니다. 어떤 기이한 사람이 나타나면 혹시 이 사람이 메시아가 아닐까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베푸신 여러 가지 이적과 기사를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이야말로 자신들이 기다린 메시아라고 구세주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고 소경이 눈을 뜨게 하고 귀신들린 사람들에게서 귀신을 내쫓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두 덩이로 오천 명을 먹이고 또 때로는 바다 위를 저벅저벅 걷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구세주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이고 사람들이 환호했습니다. 드디어 구세주가 오셔서 민족을 구원하고 답답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고 예수님에 대한 기대가 극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자신들의 최대의 현안인 민족의 독립, 말하자면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접근조차 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에게 잔뜩 기대를 걸고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던 백성들은 점점 실망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초조한 마음을 가지고 실망을 하고 급기야는 아무래도 예수님이 구세주가 아닌 것 같다고 예수님을 포기하기로 대제사장과 합작해서 예수님을 죽이기까지 했던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희망과 기대에 부합하지 못한 것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었습니다. 사실은 빌라도에게 붙잡혀 갔을 때 빌라도가 바라바를 놓아줄까 예수를 놓아줄까 했을 때 군중들이 다 예수님을 죽이라고 소리쳤습니다. 예수님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던 백성들이 예수님에게 실망한 나머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들의 예수님에 대한 좌절 때문에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몰게 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사실은 성경에는 이와 같이 예수님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 중에 예수님에게 등을 돌린 사람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끝까지 따른 사람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바로 여자들이었습니다. 사복음서에 그 이름이 각각 기록되어 있는데 오늘 본문 마태복음 28장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라고 했고 마가복음 16장에는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라고 했고 누가복음 24장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와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이었다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20장에는 유독 끝까지 예수님을 따른 사람은 한 사람 막달라 마리아였다고 말합니다. 요한복음에는 특별히 일곱 귀신을 내쫓은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에게 삼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부었던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기록에 보면 이 여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에도 십자가 밑에 있었던 여인들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다 무서워서 도망을 가고 심지어는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도 멀찍이 예수님을 따라갔는데 이 여인들은 용감하게 두려움 없이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끝까지 따랐던 이 일단에 여인들 복음서마다 조금씩 이름이 다르지만 그 여인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특별한 일입니다. 2000년 전 유대 나라는 동양의 전통과 마찬가지로 여성들이 이름을 가진 일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여성의 이름을 어디에 적는 일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족보에도 남자들의 이름만 있지 여성들의 이름은 적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던 시대에 복음서마다 여성들의 이름을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을 지켜보았던 이 여인들이 안식 후 첫날, 안식일이 토요일이니까 일요일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지 삼일 째 되는 날 지금으로 말하면 주일 이른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것입니다. 무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자들이 가기에는 두렵고 무서운 곳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들이 날도 밝기 전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일은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여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는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에 전무후무한 부활의 현장에 있던 영광스러운 여인들이 되었습니다.
행복은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내가 만들어 가지는 것입니다. 새벽같이 달려가야 희망을 만날 수 있고 희망을 잡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부활하셨는데 왜 이 여인들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것일까요? 예수님에게로 찾아가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로 달려간 여인들은 새벽에 달려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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