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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동성서침례교회 김우생 목사
하나님은 인류를 구속하기 위하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주심’(giving)은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이며 또한 하나님의 성품을 가장 잘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주심’은 인간의 필요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의 반응입니다.
복음서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으로 제자들 사이에 구두로 전해 온 서로 주고받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는 말씀입니다.
유명한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런 선언을 하였습니다. ‘창조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 분의 주시는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 분이 지으신 사람을 이 땅에 두셨으며 사람이 범죄하여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였을 때도 그 분의 아들을 주시어 파탄된 인간성을 재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덴에서 우상으로 가득 찬 도시를 보면서 그의 마음이 격동하고 분함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하나님에 대하여 전파하였습니다. (행 17:22)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4:8)라고 말하고 그 분이 베푸신 은혜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 4:10)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하나님은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사랑(Agape)의 원천은 ‘하나님’입니다. 사랑의 범주는 ‘세상’이며 사랑의 증거는 ‘주셨으니’입니다. 사랑의 성격은 희생 ‘독생자를 주셨으니’이며 사랑의 혜택은 영생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입니다. 메시지의 핵심은 ‘주셨으니’입니다. 하나님은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시므로 주시는 하나님을 아는 길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요 17:3), (롬 5:8)
모든 좋은 것은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 1:17)
하나님은 주시는 분이며 또한 행동으로 보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주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엡 5:1) 주는 자의 삶은 하나님을 본받는 삶입니다. (마 5:45), (마 10:8)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주는 자가 될 때 예수 믿는 자로서 그의 믿음을 행동으로 보이게 됩니다. 삭개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제일 먼저 변한 것은 가지려는 삶에서 주려는 삶이었습니다. 물질관이 변했습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쭈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눅 19:8)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루시퍼(아침의 아들 루시퍼 사 14:12)는 가지려고 하는 자이었습니다. 그는 사단으로 전락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시는 분이었으며 그는 구주가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주는 자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는 삶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우게 합니다. 복음을 전하므로 영적인 필요를 채웁니다. 주는 삶은 참으로 사는 삶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러면 ‘언제까지 주어야하는가?’ 천사가 대답하기를 ‘주인이 주기를 멈출 때까지 주어라!’
‘주는 것’은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미리 보낼 수 있습니다. ‘주는 것’은 탐심이 없다는 표시입니다. 젊은 관원의 문제는 탐심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고 하는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마 19:21)
‘주는 자’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눅 6:38), (잠 3:9~10), (잠 11:25), (갈 6:6~7)
‘주는 것’은 좋은 관계를 이루게 합니다.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을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 (잠 19:6)
‘주는 자’는 그의 삶에 변화를 경험합니다. 먼저 하나님께 자신을 드렸기 때문이며 사랑하기 때문입니다.(고후8:1~8)
마게도냐 교회들의 성도들은 주는 은혜가 풍성했습니다. 그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교회를 통해서 주의 이름으로 드렸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성도들에게 주의 첫 날에 드리고 연보를 모아 실행할 것을 권면하였습니다.(고전 16:1~4)
토저 목사는 주는 것(Giving)에 영적인 능력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소유도 영원한 부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그리스도에게 드린 것은 즉시 불멸의 것으로 변합니다. 예를 들면 20불 그 자체는 별로 쓸 것이 없습니다. 우유, 계란, 배고픈 어린아이들을 위한 과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20불로 선교사를 후원하면 잃어버린 영혼을 복음의 빛으로 인도하게 하는 하늘에 쌓는 보물로 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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