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이 흐트러지고서야

신봉승 / / 기사승인 : 2012-07-16 16: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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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봉승 극작가

(신봉승 극작가) 나이 탓인가, 근자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대학」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네 사는 형편이 야박해 지면서 고금의 경서(經書) 보다는 시의에 맞는 책을 읽는 경우가 많은 것을 탓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어른다운 생각이나 제대로 된 행실이 필요한 때라 그동안도 여러 번 읽었던 「대학」을 다시 펼쳐들게 되었는데 그러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새록새록 떠오른다.

물론 세상 돌아가는 일이 어이없는 데 대한 반작용일 것임이 분명하다.

천하가 모두 주지하는 바와 같이 「대학」의 중요 내용은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가를 적어놓은 글이요, 사람다움의 본분을 지켜지면 정치가 바로 되어 백성들의 삶이 편안해 진다는 사실을 지루할 정도로 되풀이 강조하고 있다.

무지렁이 같은 백성들의 시름을 덜어주어야 할 사람들이 그들의 윗자리에 있는 공직자들이라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지만, 옛날의 공직자들과 지금의 공직자와 비교해 보면 옛 공직자의 모습이 성현(聖賢)의 경지라면 지금의 공직자는 그분들의 발바닥에도 미치지를 못한다 한들 누가 탓하랴.

옛 사람들이 공직에 나가기 위해서는 과거에 등과하여야 한다. 과거에 등과하기 위해서는 사서오경에 통달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갖추어야 할 기본 도리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등과가 보장되고, 그게 공직에 나가는 조건이 된다.

그러므로 예전의 정승(총리)들이나 판서(장관)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문학과 철학적인 소양을 기본으로 갖추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아주 쉽게 설명을 하자면 율곡 이이 선생이 병조판서(국방장관)이요, 퇴계 이항 선생이 이조판서(행정자치부장관)이고, 정암 조광조 선생이 대사헌(검찰총장)이다. 뿐만이 아니다.

오리 이원익 선생이나 우암 송시열 선생이 영의정(국무총리)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해 보면 지금의 장관이나 총리의 인품이나 학문 그리고 아는 것을 실천해 보이는 모범이 그분들의 밑바닥에도 미치질 못한다는 엄연한 사실이 연일 들어나는 판국이다.

근자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대통령의 친인척,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의 행태와 고위관직들의 부정과 부패를 보면 확연히 알 수가 있다.

식견이 모자란 탓으로 남의 존경은 고사하고 경멸이나 받고 있는 처지라면 무엇인들 온전하게 간직한 게 있을 까닭이 없질 않겠는가.

그 원인을 살피고 들추어보면 고전을 읽지 않은 데서 오는 경박함이지만, 설혹 읽었다고 한 들 아예 실행할 궁리조차도 하지 않고 있는 세태에 물들어있는 판국이라 오리려 입에 담는 사람이 더 야속스러워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구절을 음미하면서 근자 우리주변의 한심한 작태들 다시 곱씹게 되었다.

- 근본이 흐트러져 있는데 말단이 다스려지는 일이 없다.(基本亂而未治者否矣)

아, 근본이 무엇이지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고, 또 그 태반의 반이 고위공직에 몸담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한심하다.

그들도 공석에서는 고전을 들추고, 또 읽은 고전은 실행하는 데 그 가치가 있음을 입에 담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서도 종내는 우리 앞에 수갑을 찬 모습을 드러내 보이면서 감옥으로 간다.

「대학」은 두꺼운 책이 아니다. 원문으로 읽자면 한학에 상당한 조예가 있어야 하지만, 번역본으로 읽는다하여도 감동이 폭은 원문에 비해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이제와 새삼스럽게 고전을 읽자고 주변을 들썩이는 일은 환영받을 일이 못되는 줄 알면서도 80줄에 들어서서 다시 읽는 「대학」을 거론하는 것은 우리들 지식인 사회가 아직은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는 미망에 허덕이고 있다는 자격지심 때문이 아닐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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