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독서의 계절? 새빨간 거짓말이다

김헌식 / / 기사승인 : 2012-10-10 16: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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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 문화평론가) 흔히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그런데 독서가 안된다.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독서가 하기 싫은 우리들은 괜히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물론 가을이 독서하기에 알맞는 계절이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가을은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 아니기 때문이다. 날씨가 선선해서 독서하기 좋다는 말은 실제에 부합하지 않는다. 선선한 날씨는 활동하기 좋으므로 독서라는 정적인 행위에 맞지 않는다. 야외활동하기에 적합한데 답답한 실내에서 독서를 하는 행위는 고역일 수 있다.

가을은 독서를 하지 않기 때문에 출판계는 매우 오랜 동안 독서의 계절이라고 캠페인을 벌여왔다. 국가나 사회적으로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독서를 하지 않고 야외 활동만 하니 국가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낳을까 우려되니 말이다. 천고마비의 계절에 사람들은 실내에 있기보다는 야외 활동을 선호하니 그런 마당에 학생들마저 실내 공간에서 독서를 한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이겠다.

워낙 독서를 하지 않게 되니 이를 개선하려는 차원에서 독서를 강조하지만 쉽게 개선되지는 않아왔다. 오히려 무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날에 책이 잘 팔린다.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가을에 독서보다는 야외 활동을 하는 것이 단지 노는 것이라고만 볼 수는 없는 이유가 있다. 가을은 일조량이 본격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햇볕이 줄어들면 인간의 생체리듬에도 큰 영향이 미치기 때문이다. 가을에는 독서보다는 야외 활동을 반드시 해야 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영국 브리스톨대 존 토비아스 박사 팀의 연구에 따르면 가을에 태어난 아이들이 덜 건강했다. 1991~1992년 사이 임신부 14000여 명을 대상으로 임신 7개월 때 햇빛에 노출된 정도와 몸 안의 비타민D를 측정했더니 11월에서 5월에 태어나는 아기는 상대적으로 뼈가 작고, 약할 가능성이 있으며 비타민D 수치가 낮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성인들에게도 가을은 영향을 미친다.

캐나다 토론토대 니콜 프라삭리더 박사팀은 평균 33세인 성인남녀 88명을 대상으로 1999년부터 2003년까지 4년 동안 양전자방출단층촬영기(PET)로 계절별로 사람의 두뇌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조사했다. 가을부터 겨울에 이르는 기간에는 사람에게서 세라토닌이 적게 분비되었다. 세라토닌은 행복감을 느끼는 호르몬이다. 즉 덜 행복한 느낌이 객관적으로 증가할수 있는 것이다.

미국 보스턴의 브리검여성병원 연구진의 연구 결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햇빛에 있었다. 뇌에서 나오는‘행복물질’인 세로토닌의 분비는 햇빛에 노출되는 시간과 관련있기 때문이다. 햇빛이 줄어들면 불안하고 우울해진다. 거꾸로 햇빛에 노출되는 시간을 늘리면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가을을 탄다는 것은 바로 이 햇빛에 있다.

가을부터 계절성정서증후군(SAD·seasonal affective disorder)을 앓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것도 이러한 일조량의 감소에서 기인한다. 빛에 따른 호르몬의 인지는 눈에서 비롯한다. 존스홉킨스 대학 신경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눈에 있는 빛에 특히 민감한 세포가 있어 이 세포가 빛의 양을 감지하고 심장박동을 조율하거나 기분과 체온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정신의학학회(APA)의 연구에 따르면 SAD는 일조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북유럽이나 북아메리카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난다. 약 50만 명의 미국인이 SAD를 앓고 있고 인구의 10~20%는 경증의 SAD를 경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듀크 대학의 연구진은 SAD환자들에게 야외활동과 정기적인 운동이 우울증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 항우울제만큼이나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야외 활동 가운데 농사 활동을 꼽기도 한다. 노르웨이와 네덜란드에서는 우울증 환자들에게 농장체험 프로그램이 효과가 크다는 점이 정부 차원에서 인정되었다. 특히 네덜란드에서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매주 1만명 이상이 농장 체험에 나선다. 농장에서 활동하는 것이 햇빛을 받을 뿐만아니라 자아통제감을 상승시켜 기분을 낫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외 활동이 여의치 않는 경우 광선 요법이 쓰인다. 이 요법은 주로 병원에서 하는 10,000럭스의 빛(햇빛은 50,000럭스)으로 하루에 15분 내지 3시간 동안 햇빛이나 인공광선 조명등 아래 앉아서 치료를 받는 것이다.

요컨대, 가을이 되면 일조량이 부족해지면서 항우울 효과가 있는 세로토닌 분비는 저하되고, 기분을 가라앉히는 멜라토닌 같은 신경 전달물질 분비가 증가해 우울증이 생기기 쉽다. 그런데 이런 기분 상태가 되면 술을 찾기 쉽게 된다. 가을부터 겨울에 이르면 술을 마시기 좋은 계절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이러한 계절적 환경에 따른 생체 상태에 연원하는 것이지 단지 선선해서 술을 마시기 좋은 계절이라는 게 아니다. 실내에서 술을 찾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야외활동을 해야 한다. 방안에 있는 것보다 밖에서 햇빛을 받는 게 정신과 육체적으로 긍정적이다.

가을부터 일조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서 적극적으로 햇빛을 받아야 한다. 본능적으로 몸은 이러한 행위를 하려 한다. 실내에서 학습만 강요할 경우, 정신적 육체적으로 역효과가 날 수 있다. 비타민 D가 부족하여 감기에 잘 걸릴 수도 있다. 물론 야외에서 책을 읽는다면 금상첨화일 수도 있겠다. 낮에는 자고 밤에 진행되는 축제와 공연 등 만을 섭렵하는 것도 타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야간 행사와 프로그램 이후에 우울의 감정이 더욱 강해질 수도 있다.

물론 가을 자체가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을에 태어난 아이들은 장수하는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가브리엘 도블하머 박사 연구팀이 덴마크 오스트리아 호주 등 3개국 100만명을 국가별 출생월별로 평균수명을 비교했더니 오스트리아의 경우 10∼12월 출생자가 4∼6월 출생자보다 평균 6개월 정도 더 살았다.

덴마크에서는 봄 출생자보다 3개월 더 살았고, 호주에서는 출생자보다 평균 4개월 더 살았다. 임신 중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많이 섭취하면 태아가 더 오래 산다는 이론이 증명되었다. 미국 시카고대학의 레오니트 가블리로프 교수팀은 1880∼1895년 출생자 중 100세 이상 장수 노인 157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이 먹을거리가 풍부한 가을 즉 9∼11월에 태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가을은 야채와 과일이 많이 나는 풍성한 계절이기에 그 계절에 맞게 음식을 섭취하고 활발한 야외 활동을 통해 부족해지기 쉬운 일조량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결국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결국 부족한 일조량을 채울 수 있는 차원의 독서가 대안일 것이다. 가을에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책은 책이로되 산책이다. 적당한 독서와 햇빛 나들이의 조화가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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