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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김상근 교수가 쓴 ≪마키아벨리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현자≫를 읽었다.
“마키아벨리는 특유의 대범함을 지녔고, 무엇 하나 거칠 것이 없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늘 가난에 쪼들렸으며, 공직에서 해고당할까 두려워했고, 줄을 잘못 서서 공직에서 파면된 뒤 실업자로 무려 15년 동안 빈둥거리는 삶을 살았던 불쌍한 인물이었다.”
“유럽정세의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 이전투구를 벌이는 피렌체 정치가들의 작태를 지켜보면서,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약자들의 현실인식에 혀를 찼던 것이다. 그의 일차적인 목적은 현실의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고전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그가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군주론』을 집필하였듯이 나 또한 우리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책을 읽었다. 왜 우리는 탁월한 지도자를 갖지 못하는가? 왜 민주진영은 새로운 대안과 희망을 만들지 못하는가? 10년에 걸쳐 패배와 좌절을 반복하고 있는가?
그는 어려운 문제와 맞닥뜨릴 때마다 고전에서 길을 찾았다. 고전에 대한 그의 애정과 관심을 조금 더 인용해 보자.
“저녁이 오면 나는 집으로 돌아가 서재로 들어간다네. 그리고 옛 시대에 살았던 어르신들의 정원으로 들어간다네. 그분들은 나를 정중히 맞아 주시고, 나는 혼자서만 그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지혜의 음식을 그 어르신들과 나누지. 나는 그 분들에게 주저하지 않고 질문을 드린다네. 왜 그때 그런 식으로 행동하셨는지를. 그럼 옛 성현들은 내게 대답해 주시지. 매일 옛 시대의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는 그 네 시간 동안 나는 아무런 피곤을 느끼지 못한다네. 내 삶에 주어진 모든 시련과 고통도 다 잊어버리지.”
나 또한 지난한 우리의 문제를 안고 옛 시대를 사셨던 어른들의 정원으로 들어가고 싶다. 이 글은 1500년대 피렌체의 마키아벨리와 나의 대화록이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근무처 바로 곁에 있는 바르젤로 감옥에서 무자비한 고문을 당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1512년 메디치 가문을 전복시키려는 음모에 가담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전 정부의 고위직 관리였던 마키아벨리에게는 모진 고난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피렌체의 엄동설한 속에서 극심한 고문의 고통과 지하 감옥의 추위에 떨며 마키아벨리는 자신에게 닥친‘최대의 격변’을 맞는다. 마키아벨리가 반(反)메디치 암살 시도에 개입했다고 불었던 음모자들은 고문을 당하고 이미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후였다.
마키아벨리는 이를 악물고 여섯 차례의 날개꺾기 고문을 견디면서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다. 그 고통 속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그 밖에 내가 당한 고생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시인인 내가 감내해야 할 고통이기 때문이지요.”
와우! 시인인 내가 감내해야 할 고통이라고?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즐기겠다?
미래에 대한 낙관을 버릴 수 없다. 불운했지만 늘 유쾌함을 잃지 않았던 마키아벨리가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피렌체 실력자였던 사보나롤라의 몰락을 분석하는 마키아벨리의 비판은 신랄하다.
“벗들이여! 부디 사보나롤라와 같은 포퓰리스트들에게 속지 마시오. 그들은 이상주의에 물든 아마추어일 뿐! 현실을 변화시킬 힘은 없는 위인들이라오. 그들도 언젠가는 당신들을 배신하고, 그 알량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당신들을 억누르게 될 것이오. 그러니 이상주의자들에게 속지 마시오.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나 먹힐 법한 협박이나 감언이설에 능숙한 그들을 제발 경계하시오.”
15세기 말 피렌체는 지금의 한국 사회와 놀랄 만큼 닮아 있다. 일반 대중들은 피아뇨니처럼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면서, 일부 선동가들의 꼬임에 넘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순진하게도 눈에 보이는 것과 귀에 들리는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믿었다.
저자인 김상근 교수는 16세기의 피렌체와 21세기 한국을 넘나든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한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중요했던 생각의 화두는 이런 불평이나 불만이 아니었다. 왜 우리 조국 피렌체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끊임없이 내동댕이쳐져야만 하는가? 피렌체에는 르네상스의 위대한 예술가가 즐비한데, 어째서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탁월한 리더가 없는 것일까?”
마키아벨리는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처럼“애정도 없이, 그리고 분노도 없이”자기 시대의 리더들을 냉정하게 분석하면서, 고전을 통한 리더십의 통찰력을 얻게 된다. 탁월한 리더가 없다는 것은 그 리더의 품격이 문제가 아니라 탁월한 팔로워(Follower)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문제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탁월한 리더가 부재했던 로마의 위기를 탁월한 팔로워의 부재로 설명했던 것이다.
존경할 만한 리더를 가지지 못해 우울한 우리 모두의 아픔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마키아벨리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우리의 지난 10년을 돌아보면서 이탈리아 조그만 도시국가의 가난한 지도자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왜 우리는 지도자가 없으며, 도대체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우리는 지난 시절 두 번 정권을 잃고 두 번 의회를 송두리째 저들에게 내주었다. 2003년 가당치도 않고 온당하지도 않았던 민주당 분당을 감행한 열린우리당의 열렬한 분당 소신파들은, 그 후 관념적 급진론과 준비 안 된 조급함, 그리고 극도의 불안정성으로 완벽하게 국민들로부터 배척당하게 되었다.
국민의 준엄한 심판으로 참혹한 결과에 직면하였으나 이 올바르지 못한 노선은 척결되지 않았다. 역사의 귀중한 시기인 지난 10년 간의 암흑의 밤에 피묻은 손으로 스스로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아직도 그들은 모르고 있다. 그동안 애써 키워온 시민운동의 싹을 뽑고 진보의 몰락을 가져왔으며 민족사의 전진을 천연(遷延)한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질렀다. 무책임한 댓글과 팔로워에 기대고 관념적 진보에 무턱대고 끌려 다녔다.
그러는 사이에 국민들의 상식의 바다에서 이탈했고 현실의 구체성에서 멀어졌다. 그러고도 국민의 지지를 받고 희망의 대안을 만들 수 있는가? 언제나 야당을 할 수 있는 작은 기득권에 안분자족 하고, 당권에 붙어 민주화 운동의 대의를 팔고 의원직을 유지하였다. 4번의 선거패배와 2007년 무려 530만 표의 민심의 폭탄을 경험하고도 새로운 지도자도, 새로운 이념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았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피렌체의 절망과 고통을 반추(反芻)하는 이유이다. 우리의 이 경향과 논리를‘이상주의 아마추어리즘’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가? 나는 지난 10년 동안 이 나라에서는 민주-반민주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운동의 정치가 지배했다고 단언한다. 진영논리와 이념성에 치우쳐 서민과 중산층의 사회경제적 현실에서 괴리되고, 수권세력으로서 국민들에게 안정감과 신뢰를 주지 못한 채 매번의 선거에서 패배를 거듭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도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고 있다.
다시 나는 마키아벨리를 기억한다.
조국 피렌체에서 추방되어 망명객으로 외국을 떠돌던 시인 단테가 「신곡」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기고, 붕괴되어 가던 19세기 러시아의 정체성에 대한 절망 속에서 토스토에프스키의 걸작「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탄생했듯이,「군주론」도 이런 좌절 속에서 탄생했다.
“나는 주저함 없이 이제까지 그 누구도 가 보지 못한 길을 개척하기로 결심했다”- 강자를 위해서 일하던 마키아벨리가 강자의 횡포로부터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로마사 논고』의 집필을 시작하며 한 말이다.
지금 우리와 국민의 소통을 가로막고 국회에서, 의총에서의 논의가 국민의 평균적인 정서와 괴리를 일으키는 일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우리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하여 민주당의 리더를 여의도 요새 속에 유폐하고 있는 세 개의 방책(防柵), 세 부류의 팔로워에 대해 논해 보자.
나는 지금까지 왜 민주당에는 지도자가 나오지 않는가에 대해 고민해왔다. 그러나 그 직접적 원인이 나 자신을 포함한 건강한 팔로워의 부재 때문이라는 점을 인정하지도 인식하지도 못했다.
민주당은 열린우리당이 창당된 2003년부터 2007년 대선 때까지 보궐선거 40:0패, 2007년 대선부터 현재까지 2번의 총선과 2번의 대선에서 연거푸 참패했다. 더욱이 2012년 총선과 대선은 질래야 질수 없는 선거였다. 국민의 60% 이상이 정권교체를 열망하고, MB 정권의 실정을 심판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런 연이은 패배의 바탕에는 민주당이 극복하지 못하고 짓눌려 있는 심각한 콤플렉스가 존재한다. 잘못된 팔로워가 움직였고 민주당은 이 팔로워가 지워준 짐을 지고 헐떡였다.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민주당의 내면에 존재하는 콤플렉스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벗어나야 민주당이 온전히 제 발로 설 수 있다. 나는 그걸 마키아벨리의 고뇌 속에서 발견했다.
나 자신과 우리당의 잘못된 팔로워들이 머리에 이고 있는 첫 번째 콤플렉스는 진보정당에 관한 것이다. 야권연대가 우리의 목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완전히 매몰되었다.
우리는 총선과 대선공간에서 진보정당과의 야권연대를 모색하고 정책연합을 하면서 당의 정체성이 모호해지지 않았는가? 선거 때마다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제기되는 진보세력과의 야권통합, 후보단일화논의는 언제나 정당하고 유효했던가?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해체, 재벌 해체, 한·미 FTA 폐기를 내세우는 그들과의 사이에 명확한 구분을 짓지 못하고 민주당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지 못했다.
특히 대선 기간 중에 ‘남쪽 정부’라며 종북 논란을 일으키는 진보 후보와 선을 긋지 못한 것은 치명적인 실책이었다. 국민 일반과 유리된 진보의 족쇄에 갇혀 있는 동안 우리 당원들과 중도는 우리로부터 등을 돌렸다.
두 번째 나 자신과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는 SNS의 팔로워에 대한 것이다. 트윗을 포함한 SNS상의 여론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공론장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국민 전체의 의사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SNS는 국민의 여론을 듣는 하나의 수단일 뿐으로, 전체 국민의 뜻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곳은 때로는 합리적인 공론보다는 극단적인 주장, 근거 없는 비방, 악의적인 신상털기식으로 도배되기도 한다. 그를 따라가다 보면 민심을 호도하고 당론을 왜곡시킬 수도 있다.
새가슴이 되어 악플에 끌려 다니고 댓글에 마음 졸이는 헌법기관이 즐비한 정당에서 국민의 지지를 모으는 지도자가 나오기를 고대하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일이다.
또한, 모바일투표는 일반국민의 의사를 당에 반영시키려는 좋은 목적으로 도입됐지만, 지난해 두 번의 전당대회와 총선, 대선 후보자 선출 등 네 차례의 큰 당내선거에서 결과적으로는 특정세력의 당권장악의 통로로 변질되었다.
패배한 선거를 주도한 세력들이 고스란히 당의 책임자로 다시 설 정도로 조직화된 소수가 선거로 표출된 일반 국민의 민심을 왜곡시켜 온 것이다.
세 번째 나와 우리당이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는 시민단체에 대한 것이다. 시민단체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역할은 지대하고 지금도 사회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정당정치는 시민운동과 보조를 맞추어 협력하면서도, 다른 내용과 방식을 가지고 독자적인 기능을 유지해야 한다. 시민단체는 어떤 주장이든 자유롭게 개진하고 사회 공론화시킬 수 있다.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반면, 책임은 제한적이다.
정당은 정책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는 구체적 실천행위를 해야 한다. 정책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유용한지, 실현 가능한지, 국민이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등 면밀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
시민운동과 달리 정당정치는 책임정치이고, 정당은 정부와 의회권력의 담당주체로서 국정운영에 책임을 지고 이후 선거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결국 문제의 출발은 나로부터이며 우리들의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민주당의 콤플렉스는 신동엽 시인의 시‘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에서 말하는 먹구름이고 쇠항아리다. 민주당이 앞을 제대로 내다보지 못하도록 하는 먹구름이고, 기개를 펼 수 없도록 짓누르는 쇠항아리다.
민주당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콤플렉스를 이제는 닦아내고 찢어버릴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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