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패배로 이끈 여섯 개의 깃발

김영환 / / 기사승인 : 2013-04-11 16: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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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국회의원

중국 남북조시대 송나라 효무제(孝武帝)가 숙적인 북위(北魏)를 치기 위해 문신들과 의논하는 자리에서, 장군 심경지(沈慶之)가 말하길 ‘밭일은 농부에게 맡기고 바느질은 아낙에게 맡겨야 하는 법인데, 어찌 나라의 출병(出兵) 문제를 백면서생(白面書生)들과 상의하십니까?’라고 했다. 그러나 효무제는 심경지의 진언에 따르지 않고 문신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출병했다가 크게 패하고 말았다. (≪宋書(송서)≫ 沈慶之傳(심경지전))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5년 초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갖춰 정치를 해야한다’라는 격언을 남겼다. DJ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덕에 절대과반 의석을 차지한 열린우리당 개혁파들이 이상적 개혁논리에 치우쳐 강공책을 펴다 실패한 과오에 대해 송나라 효무제의 故事를 들어 경종을 울린 것이다.(민병욱 전 간행물윤리위원장 칼럼)



2007년 이후 연이은 총선과 대선패배로 10년간 정권을 내준 민주당은 이번 5.4 전당대회에도 불구하고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안철수 현상’은 이미 ‘안철수 정치세력화’로 진화를 시작했고, 민주당의 야당 독과점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근원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 그 동안 우리는 ▲당의 이념적 정체성과 노선, ▲정치문화와 행태, ▲당 조직의 구성과 운영상에 편향과 오류를 저질러 왔다.



△현실감각이 결여된 관념적급진주의, △진영논리에 따른 대결투쟁주의, △진보정당과 시민단체에 끌려 다닌 야권연대노선 등이 그것이다. 한 마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륜과 통찰력에서 나온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의 부조화, 편향이라고 할 수 있다.



세 가지 편향 중에 민주당의 이념적 정체성과 노선상의 문제점에 대해 현 강령을 중심으로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자. 문제가 많은 내용을 이번 5.4 전당대회에서 획기적으로 고침으로써 당의 변화를 실천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당 강령은 정당의 존재이유를 국민들께 천명하는 기본적인 입장과 정책방향이다. 현재의 강령은 2011년 말 기존의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이 합쳐 민주통합당을 창당하면서 만들어졌다.



진보성향의 시민정치세력과 민주당내 진보파들이 민주통합당의 창당을 주도함으로써 당 강령은 다수국민의 상식에 어긋나는 급진진보적인 편향을 띄게 되었다.



첫째, “서민·노동자·농어민·중산층을 포함한 99% 국민을 위한 정당을 지향 한다”는 부분이다. 세계 어느 나라 당 강령에 ‘99% 국민을 위한 정당’이라는 내용이 있는가? 1% 국민은 제외한다는 말인가?



국민 편 가르기, 국민 분열의 논란이 되었다. 또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령의 표현이었던 ‘중산층과 서민의 당’에 노동자·농어민이 들어갔다. 민주당은 계급정당이 아닌 대중적 국민정당이다. 당의 정체성과 관련된 내용으로서 ‘99%와 노동자·농어민’은 삭제하고, ‘중산층과 서민의 당’이라고 해야 한다.



둘째, “한미 FTA를 전면 재검토 한다”는 조항이다. 국가 간의 협정에서 일방적인 전면재검토가 실제로는 한미 FTA 폐기로 읽히면서 많은 갈등을 일으켰다.



이미 발효되어 이행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악화를 불사하면서까지 전면재검토 할 사안인가? 국가 간의 신뢰문제이고 민주당이 다시 집권할 경우 도저히 실천할 수 없는 정강정책이다.



참여정부 때 정부 간 협상이 타결되었기 때문에 민주당이 말 바꾸기를 한다는 불신을 자초하였다. 이 문제는 민주당이 진보정당, 시민단체와의 야권연대에 끌려 다니면서 드러낸 대표적인 급진적 편향이다.



당 변화의 구체적 징표로서 강령에서 삭제하되, 대안으로서 ‘한미FTA의 독소조항 수정과 FTA 피해대책’을 당의 정책으로 추진하면 된다.



셋째, 당 강령에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북핵과 국가안보에 대한 기본입장이 없다. “평화와 통일이 함께 가는 대북정책을 추진 한다”라고 되어 있는데,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핵심요인은 북핵이 아닌가?



‘주변 강대국의 전략 때문에 평화통일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인식도 잘못 되었다. ‘북핵 불용과 평화를 위한 한반도 비핵화’, ‘확고한 국가안보’라는 기본입장을 천명해야 한다. 대북안보관이 불안한 세력이라는 의구심을 주어서는 수권정당이 될 수 없다.



넷째,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부분이다. 근본적 개혁이란 제도적으로 재벌의 계열분리와 대기업의 기업분할 방식이 있으며, 내용적으로는 재벌해체로 해석된다.



과거 열린우리당, 통합민주당 강령에는 재벌개혁이라는 용어조차 없었고, “기업의 투명성, 지배주주 및 경영진의 책임성 강화”등으로 규정되었다.



심지어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와 환경조성” 이라는 강령도 있었다. 현 강령에 경제민주화가 강조되었기 때문에 ‘공정한 시장경제를 위한 재벌개혁 필요’ 정도면 된다. 현실과 국민정서로부터 반 발짝만 앞서 나가야지 관념적 급진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다섯째,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여 실질적 무상의료 달성”이라는 항목이다. 재원조달의 문제에서 무상의료가 실현가능한 정책인가? 지난해 대선공약에는 ‘연간 환자 본인부담 100만원 상한제를 단계적으로 실시한다.’라고 되어 있었다.



무상의료라면서 100만원 부담은 또 무엇인가? 현실성 없는 정책은 국민신뢰만 떨어뜨릴 뿐이다. 더구나 부담이 없는 무상의료는 “자율과 책임”을 배제한 국가시혜 의존적인 복지로서 과연 바람직한 정책인가 라는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여섯째, “종편채널을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부분이다. 이것도 다수국민의 정서와 현실을 무시한 강령이다. 원점 재검토는 결국 폐지한다는 말 아닌가? 그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무리한 사고와 현실인식 때문에 ‘종편출연 금지’라는 당론 아닌 당론이 생겨났다.



지난 총선, 대선 때 2030세대에게 “나꼼수”가 있다면 종편은 “5060세대의 나꼼수였다” 라는 평가가 있었다. 편향된 노선으로 대국민 홍보의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여 대선패배의 한 원인이 되었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의 언론매체 출연여부를 당론으로 줄을 세우다니 후대에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필연적인 결말로 최근 ‘종편출연 금지’ 당론을 폐지한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지만 당연한 조치이며, 이 강령은 폐지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지난 대선패배를 이끈 여섯 개의 깃발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급진적, 이념 편향적, 투쟁적인 진보가 아닌 새로운 중도진보의 깃발을 들어 올려야 한다. 이것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서생적 문제의식에 상인적 현실감각을 보태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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