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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환 국회의원 |
훌륭한 연설은 포즈와 침묵의 여백 속에 있다. 국민을 가르치려 말고 믿어야 한다. 국민들은 우리가 하고 싶은 말과 하지 않고 삼키는 분노와 울분의 그림자를 다 꿰뚫어 보고 있다.
어제 대한민국 국회는 헌정의 금자탑을 하나 더 쌓았다. 국민들이 버젓이 보고 있는 가운데 나라의 품격도 외교의 금도(襟度)도 내팽개치고 정쟁으로 달려간 국회의 일그러진 단막극의 막이 올랐다. 망설임도 없이, 부끄러움도 없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인 NLL에 기름을 붓고 연속극으로 만드는 일에 야당이 동조했다. 그것도 여야 모두 의총을 거쳐 수백명의 헌법기관을 당론으로 꽁꽁 묶고 본회의장에 포박하여 재갈을 물렸다.
마침내 국회에서는 대통령정상회담 대화록의 공개를 결정했다.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어쩌자는 것인가? 국익을 버린 보수와 국민을 버린 여당이 할 수 있는 일이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이고 대화록의 공개이다. 그 매국과 부정의 길에 야당이 함께 따라나섰다.
어찌 민주당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에 앞장을 서게 되었는가! 민주당도 결국 여당과 똑같이 당리당략의 수렁에 빠져 버린 것이 아닌가? 아프리카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일을 백주에 대한민국의 국회가 여야 합의로 해치웠다. 이것으로 NLL논쟁을 마무리하자고? 소가 웃을 일이다. 국민들이 진저리내는 또 다른 정쟁의 서막이 올랐을 뿐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여 지듯이, 이미 국민은 NLL문제가 물타기용이며 여당의 政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이 문제로 평지풍파를 일으키는가! 이 와중에도 NLL은 의연하다. 어제도 오늘도 의연하다. 누가 뭐라 해도 굳건한 우리의 領土다. 독도가 우리의 땅이듯이.
그런데 이게 더 이상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이 문제로 날이 새고 시간을 보내야 할 만큼 우리는 한가한가! 기가 막힌다.
말이 나온 김에 우리가 먼저 절제해야 할 말이 있다. 국정원 개입사태가 대통령선거의 당락에 영향을 주었다며 선거결과 불복으로 비칠 수도 있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 경박함을 버려야 한다. 그 일은 대선에 영향을 준 중대한 사안이기는 하지만, 당락을 바꿨다고 주장한다면 과연 다수국민이 동의할 수 있을까? 마치 지난 대선 이후의 재검표 사태를 연상케 한다. 억울하고 분한 일이지만 우리가 자중자애(自重自愛)해야 할 일이다.
두 번째 지금은 국회를 뛰쳐나가지 않는 것이 개혁이다. 걸핏하면 장외로 나가는 국회의원과 정당에 대해 국민들은 식상해 하고 있다. 대학생들이 시국 선언을 하고 시청 앞에 촛불이 켜졌다. 그들과 우리는 함께 해야 하지만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왜 국회가 존재하는가를 생각해 볼 일이다. 정치의 운동화가 아닌, 운동의 정치화가 우리가 갈 길이다. 갈등의 조정과 타협에 의회정치의 존재이유가 있다. 이것이 바로 절제의 두 번째 착점이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에 강력히 투쟁하면서도 대선 불복으로 비쳐지는 소위 장외투쟁에 지도부는 신중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순간 우리는 국민의 신뢰를 한꺼번에 잃게 될 것이다. 민주당만은 정략을 버려야 한다. 집권여당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그러나 국민은 다 안다. 아니 정치인만 모를 뿐이다. 민주당은 억울하지만 분루(憤淚)를 삼키고 절제해야 한다.
국회계단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벌이는 시위는 무언가 어색하다. 우리가 잠시 검토한 로텐더홀의 농성도 어쩐지 철 지난 옷처럼 보인다. 벽창호(碧昌-) 같은 여당과 우리들의 분노 사이에 선택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또한 구태정치의 하나다. 국회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국회의원들이 시위를 벌이는 일은 우리 국회의 무능함을 고백하는 부끄러운 자화상일 뿐이다.
여당은 물론 민주당에게도 새로운 정치에 대한 많은 요구가 있다. 새로운 정치를 향한 속도와 방향을 두고 정당과 정파 간에 숨 막히는 경쟁에 돌입해 있다. 정부와 여당은 국익과 민주주의의 원칙을 버리고 구태(舊態)를 선택했다.
오직 남은 하나, 민주당은 변했는가! 우리는 과거와 무엇이 다른가!
민주당은 분노를 삭이고 ‘절제의 미학’을 통해 우리의 변화를 보여 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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