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는 중앙정치의 노리개가 아니다

안성호 / / 기사승인 : 2014-01-14 16:54:49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안성호 대전대 교수
▲ 안성호 대전대 교수
새누리당은 지난 연말부터 광역시의 자치구・군의회를 폐지하고, 도의회의 기능을 시・군의회가 대신하도록 하며, 단체장 연임제한을 현행 3선에서 2선으로 감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지방자치제도 개편안을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요즘 전국의 지방의회・단체장협의회와 시민단체는 “새누리당이 대선공약으로 내건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제쳐둔 채 되레 지방자치의 근간을 허무는 제도개편을 획책”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광역시의 자치구・군의회의 폐지는 “지방자치단체에 의회를 둔다”는 헌법 제118조에 따라 자치구・군제의 전면 폐지를 의미한다. 혹자는 자치구・군의회의 폐지로 인한 대도시행정의 민주주의 약화문제를 구청장 직선제로 보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광역시의 하급행정기관으로 전락한 행정구의 구청장 직선은 지방자치의 본질적 요소인 자치권의 상실을 보완할 수 있는 적절한 대책이 아니다. 더구나 자치권을 갖지 못한 선출직 구청장의 모호한 위상과 역할은 대도시 행정의 혼란과 갈등을 가중시킬 것이다.

대도시 자치구・군제 폐지의 근본 문제는 자치구・군의 폐지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통념과 달리 행정서비스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엘리노 오스트롬은 스톡홀름 대학의 기념강연에서 자신과 다른 연구자들이 수행한 많은 경험적 연구들은 대도시지역의 지방정부 합병이 행정서비스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대도시개혁론자들의 주장이 그릇된 것임을 밝혀왔으며, “대도시지역 다중심체제의 복잡성은 혼돈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히 입증되었다”고 역설했다. 그녀는 대도시지역을 수많은 소규모 지방정부들이 관할하는 다중심체제가 하나의 광역정부로 이루어진 단일중심체제보다 더 효율적인 까닭은 다중심체제의 민주적 효율성 메커니즘, 즉 경쟁, 발언권, 공공기업가정신, 공동생산, 가외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자치구・군 폐지론자들은 단층 자치제의 부작용을 경험해온 국내 시・군 합병 및 폐지 사례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특히 제주도 시・군 자치 폐지의 교훈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제주도는 2006년 7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로 출범하면서 4개 시・군 자치제를 폐지하고 2개 행정시로 전환했다. 이후 지역불균형 심화, 과거 서귀포시・남제주군・북제주군의 발전활력 저하, 주민참여 제약, 민관갈등 증폭 등으로 주민의 불만이 비등했다. 이런 상황에서 치러진 2011년 6월 도지사선거에서 후보들은 경쟁적으로 시・군 자치 부활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기초자치 부활”을 핵심 공약으로 내고 당선된 현 우근민 지사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제주도 자치제도 개편안을 마련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2년 넘게 활동한 끝에 시・군 자치 부활이 시・군 합병과 자치구 폐지를 추진해온 정치권의 의도에 반하기 때문에 법제화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행정시장 주민직선제안을 채택해 건의했다.

새누리당이 고려하고 있는 기초・광역의회 합병방안, 즉 도의회선거를 폐지하고 도의회 기능을 시・군의회가 대신하는 방안은 수십 년 동안 지방자치를 연구해온 필자로서 납득하기 어렵다. 이 기상천외한 발상은 2005년 여・야 대표들이 여의도 모 식당에 모여 합의했던 반민주적 지방자치체제 개편안을 상기시킨다.

당시 여・야 대표들은 정기국회에서 전국의 시・군을 합병해 60-70개의 광역시로 개편하고 도자치제를 폐지하는 대신 중앙정부가 임명하는 청장이 관할하는 7-8개의 광역지방행정청으로 개편하기로 합의했다.

이 개편안은 전문가들과 시민단체의 저항에 부딪혀 실현되지 않았으나 그동안 잠복상태로 있다가 이따금씩 시・군 합병과 자치구 폐지안 등의 형태로 불거져왔다.

아울러 대다수 전문가들은 단체장의 연임제한을 3선에서 2선으로 감축시키는 것을 지방자치제도 개선방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지방자치제도 선진화의 관건은 지방의 창의성과 잠재력 발휘를 속박하는 ‘소용돌이 정치체제’를 분권・참여체제로 전환하는 획기적 지방분권개혁을 단행하는 것이다.

진정성 있는 지방분권개혁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 다수의 국민이 원하는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대선공약을 철회할 의지를 내비치면서 헌정질서의 근간인 지방자치제도를 뿌리째 뒤흔들 광역시 자치구・군의 폐지, 기초・광역의회의 합병을 통한 도의회 무력화, 단체장의 연임제한 감축 등으로 중앙집권화의 역공을 펴는 것은 결코 선진 통일한국시대를 열어야 할 공당(公黨)의 온당한 처사가 아니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안성호 안성호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