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홍문종 국회의원 |
그래서 지휘자는 없어도 그만인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참으로 무지막지한 오해였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휘자야말로 양질의 음악양산에 가장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존재였다.
음악회의 성패가 그의 미세한 손 움직임 하나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참으로 그 역할이 막중했다.
국정감사가 한창인 국회 상임위원장에게서도 지휘자의 모습이 보인다.
결 다른 여야 위원들을 다독여가며 무난한 진행을 위해 기량을 발휘해야 하는 위원장의 입장이, 개성 다른 악기 조율을 통해 아름다운 하모니를 창출해야 하는 지휘자의 사명감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여러 의원들이 번갈아 발언하는 과정에서 온종일 자리를 지키며 반복되는 얘기를 듣는 고충도 그렇고 소모적인 논쟁을 톤다운 시키거나 의제 조정의 기량이 요구되는 상황도 지휘자의 그것과 흡사하다.
미방위원장을 맡고 있는 내 경우도 몇 개의 노하우로 상임위 운영에 공을 들이고 있다.
특정 상황 발생시 발언 도중 이석하거나 정회선언, (휴게 공간을 찾아)야당 위원과의 잡담, 급기야 헐리우드 액션 등의 조치를 동원하는데 직접화법 보다는 암호 같은 액션을 선호하는 편이다.
현안이 밀려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면 위원들에게 특정 사인을 보내기도 한다. 심지어 화가 많이 난 듯 연기할 때도 있다.
이른 바 과격발언이 예상되는 야당 순서를 앞두고는 슬쩍 야당 간사에게 사회봉을 넘긴다든지 야당 공세에 여당의 강공 대응으로 분란이 예상된다 싶으면 가장 센 공격수인 여당 간사를 사회자로 불러내기도 한다. 간혹 내 생각과 완전히 다른 발언이라도 끝까지 들어주는 등 의견 개진이 가능하도록 진정성을 가지고 배려한다.
현지 감사 때는 그 지역 출신 위원에게 사회봉을 맡겨 장마당을 펼칠 기회를 배려하는데 이 역시 원만한 상임위 운영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기법이다.
국감장에서 눈을 감고 있는 내 모습이 언론을 탔다.
그러나 잠을 자고 있다는 설명이 달린 이 사진기사는 ‘오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물리적으로도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상임위원 한 명에 주어지는 발언시간은 7분이다.
발언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잔다고 해봤자 총 7분에 불과하고 곧바로 다음 순서를 진행해야 하는 입장이다. 더구나 당시 상황은 국회 국감 중 가장 뜨겁게 달아올랐던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의 증인심문 현장이었다.
수많은 카메라와 기자, 피감기관, 동료들의 이목이 집중돼 있는 현장에서 아무리 무딘 사람이라고 해도 과연 자는 게 가능하겠는가.
‘잠자는 사진’은 상임위를 원만하게 이끌 책임을 가진 위원장으로서 고영주 이사장을 두고 여야 간 치열한 공방을 반복하는 난감한 상황 타개를 위해 동원한, 고도의 헐리우드 액션이었다.
기자들은 몰랐지만 독한 설전으로 상임위를 살벌하게 달구던 야당위원들은 이내 알아차렸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위원장님, 그 헐리우드 액션 절묘했어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프로 상임위원장의 정치적 스킬 정도로만 봐 주셨으면 한다.
본의 아니게 어머니 근심지수를 올리게 됐지만 언론보도에 큰 불만은 없다.
'사진’ 덕분에 고단한 나의 일상을 걱정해 주는 분들이 늘었으니까.
해당 기자님들께 감사드릴 일이다.
더불어 이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 갈 뿐이다. 마찬가지로 상임위원장은 졸지 않는다. 다만 조는 척 할 뿐이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