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서거를 애도하며

고하승 / / 기사승인 : 2015-11-23 15: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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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22일 새벽 서거함에 따라 한국 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양김시대’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YS는 6년 전 별세한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들은 민주화 투쟁 동지이자, 영원한 정치적 맞수로 ‘양김시대’를 열었고, 이제 그 '양김시대'가 이제 역사 속으로 저물게 된 것이다.

YS는 주민을 배려하는 마음이 남달랐다.

일반 국민들은 잘 모르지만 ‘민주조기회’라는 게 있다. YS 저택 인근인 서울시 동작구 강남초등4길 12번지에 자그마한 사무실까지 마련했다.

민주조기회는 매일 아침 상도동 자택 주변에서 조깅을 하는 YS와 함께 뛰는 지역주민들의 모임이다. 거창하게 운동장에서 조깅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자택근처의 공터를 왔다 갔다 하는 정도다. 모여든 주민들 수에 비해 조깅 장소가 너무나 협소했다.

그러다 보니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났다. 선두에 선 YS가 터닝을 하고는 한동안 제자리 뛰기를 한다. 자신을 따라오는 주민들이 다시 자신의 뒤로 돌아와 자리 잡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다. 이런 배려가 있었기에 지역 주민들이 민주조기회라는 걸 만들어 수십년 동안 함께 했을 것이다.

사실 조깅에 관한한 YS는 승부욕이 대단한 사람이다.

그는 1993년 7월 청와대에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조깅 이벤트를 마련했다. 물론 양국 대통령이 조깅을 함께하면서 굳건한 한·미 동맹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YS 특유의 승부욕이 발동, 그날 유독 빨리 뛰었다고 한다. 클린턴 전 대통령도 예상 밖 템포에 당황하는 기색은 있었지만 김 전 대통령에게 뒤지지 않았고, 결국 한두 바퀴 뛰고 마무리될 줄 알았던 그날 두 정상의 조깅은 무려 12바퀴를 돌고 마무리됐다고 한다.

그런 승부욕을 지닌 YS이지만 지역주민들에게는 배려가 우선했던 것이다.

그는 친화력도 대단한 사람이다.

YS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취임하기 전, 그의 상도동 저택을 방문한 일이 있다.

차 한 잔을 마시는 정도의 극히 짧은 만남이었지만 마치 친근한 동네 아저씨를 대하는 듯 편안했던 시간을 지닐 수 있었다.

사실 필자는 상당히 내성적이다. 남과 가까워지는 게 쉽지 않은 성격이다. 그런데 YS는 그런 성향의 사람마저 친근하게 느껴질 만큼 친화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YS와 수십 년을 동고동락한 ‘상도동계’가 지금은 각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그럼에도 YS에 대한 애정이 한결같은 것은 그런 성향에 감화된 탓일지도 모른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YS는) 저항할 수 없는 친화력으로 좌중을 압도했다”고 회고했을 정도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을 “민주화 운동에 대한 배신이자 밀실야합”이라고 비판하며 YS와 결별했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뒤 잊지 않고 상도동을 찾았다.

지금 정치권에는 이른바 ‘YS 키즈’가 상당수 포진해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YS 빈소에서 자신을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이라고 했다.

빈소를 찾은 서청원 최고위원 역시 대표적 YS맨으로 “(YS는) 저의 정치적 대부”라고 말했다.

박근혜정부 청와대 인사 가운데 신동철 정무비서관과 조인근 연설기록비서관, 정관주 국민소통비서관 등도 범상도동계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도 대표적 ‘YS 키즈’로 꼽힌다. YS는 1993년 경기도 광명을 보궐선거에 손 전 고문을 민주자유당 후보로 발탁했을 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그들 모두가 그의 서거를 애도하고 있다.

DJ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도 “우리 국민은 YS를 대한민국을 변화시킨 대통령으로 기억할 것”이라며 “손명순 여사와 유가족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애도를 표시했다.

물론 YS는 금융·부동산 실명제 도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등 한국 경제를 선진화하기 위한 초석을 닦았지만, OECD 가입을 위해 급속한 개방과 저환율(원화가치 상승) 정책을 펼친 여파로 IMF 위기라는 사상 초유의 국가 부도 사태를 초래한 책임이 있는 등 과오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평가는 훗날 역사학자들에게 맡기고, 지금은 우리나라 14대 대통령으로서 국민들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그의 서거를 진정 애도하는 마음만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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