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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가 지난 28일 손학규 전 상임고문과의 회동이 성사되지 않자, 발길을 돌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만났다고 한다.
이 원내대표는 당초 손 전 고문이 있는 강진 토굴로 찾아가 1박을 할 예정이었지만, 손 전 고문 측에서 만남을 사양하겠다는 뜻을 전했고, 이에 이 원내대표는 어쩔 수 없이 광주 송정역에서 준비된 차량으로 전북으로 이동, 모처에서 정 전 의장을 만났다는 것이다.
이 원내대표는 손 전 고문을 만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듯 "추후 (손 전 고문을 만나기 위한)일정을 다시 잡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계 복귀를 하라는 주변의 권유에 막걸리를 마시며 "살으리 살으리랏다. 청산에 살으리랏다"라는 가사의 '청산별곡'을 부르며 답을 대신한 손 전 고문이 순순히 그를 만나 줄지는 의문이다.
사실 요즘 이종걸 원내대표의 행보를 보면 마치 앞뒤가 꽉 막힌 사람처럼 답답하기 그지없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국교정상화 50주년인 2015년을 사흘 남겨두고 박 대통령은 한·일 관계의 최대 걸림돌이자 난제였던 위안부 문제에 결단을 내렸다.
박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3년 3.1절 기념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한 이래 최근까지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압박하며 결단을 촉구해왔다. 그랬던 박 대통령이 스스로 고리를 푸는 결심을 내린 것이다.
물론 이번 한일협의는 100% 만족할만한 결과는 아니지만,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책임을 통감한다고 한 점과 군의 관여를 인정한 점, 일본 정부 예산으로 기금을 조성하기로 한 것 등은 상당히 진전된 것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이 원내대표는 이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물론 야당 원내대표로서 “양국이 합의문에 법적 책임을 명기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는 정도의 지적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비판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
실제 그는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어제 있었던 한·일 협의는 50년 전 박정희 대통령이 청구권 자금 3억원에 도장을 찍었던 제1차 한일굴욕협정 이어 제2차 한일굴욕협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세히 보면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일본의 법적 책임·명예회복·국민적 동의를 얻지 못한 3무(三無) 합의"라며 "한국 정부는 회담 성과를 부풀리는 데 급급하면서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이 이날 “굴욕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데 대해 민족적 격분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비난한 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과연 그런 소리에 동의해줄 국민이 얼마나 될까?
지금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집권당인 새누리당 지지율 절반 수준을 가까스로 넘어선 상태다. 게다가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안철수 신당 지지율과 오차범위 내에서 초접전을 벌일 만큼 초라하기 그지없다. 어쩌면 자꾸 갈등을 부추기는 이종걸 원내대표도 정당 지지율 하락에 한 몫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사실 이종걸 원내대표는 민생보다 지나치게 이념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국회에서 시급히 처리돼야 할 민생관련 각종 법안들이 야당에 발목 잡힌 것을 보면 이 원내대표가 얼마나 이념에 함몰돼 있는 정치인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의 반대로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기업활력제고법을 비롯해 노동5법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전날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국회가 면세점 사업권을 5년으로 단축하는 관세법 개정안을 통과시킨데 대해 “대통령이 통과시켜 달라고 애원에 가깝게 하는 법안은 수년 동안 묶어놓고 있으면서 이런 법안은 토론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통과시키는 현실이 통탄스럽다”고 국회를 비난했겠는가.
이제 정치도 이념을 떠나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문제에 신경을 써야 한다. 현재의 정당 지지율에 보듯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민생을 외면하고 쓸데없는 이념문제에 매몰된 때문이다.
또 안철수 신당이 단숨에 제1야당을 위협할 정도로 높은 지지를 받는 것은 바로 ‘낡은 진보’와 ‘수구보수’청산을 외치며 ‘실사구시’정책정당을 선언한 때문이다.
어쩌면 강진에 은거 중인 손 전 고문도 극단적인 이념갈등과 지역갈등을 빚는 우리의 정치에 염증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가 약속했던 ‘저녁이 있는 삶’은 분명 이념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따라서 이념갈등을 부추기기만하는 이종걸 원내대표를 손 전 고문이 만날 까닭이 없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혹시 모르겠다. 이제라도 마음을 바꿔 민생을 살피는 야당의 원내대표로 환골탈태 한다면 만나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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