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포스터/아시아브릿지컨텐츠 제공 |
‘한개사’는 자폐아 크리스토퍼가 유일하게 친구처럼 여기는 옆집 개 웰링턴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시작된다. 이후 크리스토퍼는 웰링턴을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내기 위해 처음으로 사회에 발을 내딛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알지 못했던 여러 가지 상황들에 목도하며 천천히 변화를 겪는다.
‘한개사’가 독특한 지점은 이미 연출적으로 완성도 있는 작품의 희곡을 완벽하게 재해석했다는 것이다. 마크 헤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각색된 작품은 이미 해외에서 올리비에 어워드 7관왕, 토니상 5관왕을 달성했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김태형 연출의 지휘 하에 완전히 새로운 미장센으로 표현돼 관객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이 작품은 대극장에서 하는 공연임에도 무대를 꽉 채우는 세트나 회전무대를 이용하지 않는다. 도리어 빈무대 형식을 차용하고 배우들이 직접 대도구를 옮기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줘 무대와 관객 사이의 제4의 벽을 허물어뜨린다. 작중 자주 ‘연극’이란 단어를 쓰고 서사적인 요소를 사용해 극중극 형식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것이 더 크게 확장되는 건 그 극중극이 막이 내리는 순간에도 파괴되지 않기 때문. 보통 연극은 커튼콜에서 배우가 배우로서 인사하며 막을 내린다. 그러나 ‘한개사’는 “그건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요?”라는 외침과 함께 크리스토퍼가 크리스토퍼로서 인사를 한다. 이 연출로 이 무대 자체가 그를 위한 위로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그리고 그 위로는 마침내 관객에게도 ‘해낼 수 있다’라는 용기를 심어준다.
또한 ‘한개사’는 화려한 조명과 영상을 이용해 크리스토퍼의 무한한 상상력을 고스란히 무대에 옮겼다. 그가 상상하는 우주비행의 장면은 아름다운 영상과 조명으로 펼쳐지며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들은 상징화된 숫자와 브랜드 마크로 꾸며져 독특한 그의 정신세계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음향도 가장 원초적인 주파수와 전자음을 사용해 크리스토퍼가 인지하는 ‘정보’ 자체를 표현한다.
‘한개사’가 더욱 빛나는 건 이렇게 깔끔하게 준비된 무대에서 배우들이 각자 활약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실질적인 무대 전환을 준비하면서도 동시에 움직임과 연기를 빼어나게 소화한다. 조연진의 앙상블 속에서 주연배우들의 호흡이 함께 해 무대가 더욱 빛난다.
크리스토퍼 역의 윤나무는 막대한 양의 대사도 깔끔하게 전달하며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였다. 그의 섬세한 연기는 막바지에 감동적인 정서를 안겨준다. 에드 역의 김영호 역시 뮤지컬 경험의 깊은 내공으로 아버지라는 인물의 다양함을 표현해 극의 중심을 잡아준다. 시오반 역의 김지현, 주디 역의 양소민을 비롯한 배우들도 시시각각 변하는 극의 흐름을 흔들림 없이 이끌면서 손색없는 하나의 세계를 구현한다.
새로운 것은 항상 그것을 탄생시키기 위한 시도가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시도는 위험을 초래할지 즐거움을 동반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시도에는 늘 용기가 필요하다. '한개사'는 그런 용기를 통해 완성됐고 그렇기에 무대 위에서도 그 감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힐링'이 필요한 이 시대,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이 관객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길 수 있는 건 그러한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이지 않을까.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