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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에선 호남참패의 책임을 지고 정계은퇴를 선언해야할 문재인 전 대표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그를 대신할 희생양이 필요한 더민주는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의 ‘호남패배 책임론’을 제기하는 등 그를 희생양으로 몰아가려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호남참패의 원흉으로 문재인 전 대표가 아니라 김종인 대표를 지목하는 것은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기 때문이다.
더민주와 호남민심을 놓고 경쟁관계에 있는 국민의당에서조차 김 대표의 공로를 인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은 2일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난파 직전의 더불어민주당을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취임해 구해낸 건 사실”이라며 “(김 대표가 더민주를) 제1당으로 성공을 시켰기 때문에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상당한 공이 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꼬여 있는 정국에서 김 대표만큼 훌륭한 분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갖는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다른 당도 아니고 더민주 내부에서 호남참패에 따른 ‘김종인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정성호 비대위원이 "호남 패배 책임이 왜 김종인 대표에게 돌아오느냐"며 어이없다는 뜻을 피력했지만, ‘김종인 책임론’은 더욱 거세지는 양상이다.
우선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이 4䞉총선 호남 참패의 원인으로 ‘김종인 체제’를 꼽으며 당헌에 따른 전국대의원대회(전당대회) 개최를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열어 차기 당대표를 선출할 경우 김 대표 체제는 사실상 끝난다. 김 대표가 외부 영입인사라 당내 지지기반이 약한 만큼,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뽑힐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2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비정상적인 비대위 체제가 오래 가는 것은 문제가 많다”며 “혁신안에는 총선 직후에 (전당대회를) 하게 돼있다. 여러 가지 할 일이 많은데, 절차적 정당성이 부족한 비대위 체제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김 대표에게 호남 참패의 책임을 물으며 날을 세웠다.
그는 “여론조사를 보면 호남에서 김 대표가 방문한 뒤 지지율이 10% 폭락했다”며 “광주 지방의원들이 김 대표가 방문했을 때 기자간담회에 안 나오고, 오히려 조기 전당대회를 해야된다는 성명을 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추미애 의원은 전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호남 패배를 가져온 현 비대위 체제를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더민주의 심장인 호남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무너진 지지 기반의 이탈을 막고 상실감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현행 과도체제를 종식시키고 당을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민주정책연구원과 강기정·홍종학 의원 주최로 열린 '호남 총선 평가 토론회'에선 호남 선거 참패의 원인으로 김 대표의 셀프 공천이 지목되기도 했다.
반면 문재인 책임론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약속대로 호남참패의 책임을 지고 정계은퇴 하라는 목소리도 없다.
문 전 대표는 총선 직전인 지난 8일 광주 충장로에서 "호남이 지지를 거둔다면 미련 없이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겠다. 대선에도 출마하지 않겠다"고 국민과 약속했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총선 전날인 12일까지 호남 곳곳을 방문해 지원유세를 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더민주는 호남 지역구 28석 중 불과 3석을 얻는 데 그쳤다. 대참패다.
그런데도 문재인 전 대표는 정계은퇴를 선언하지 않았다. 실제 그는 호남 지역 총선에서 참패한 직후 "호남 민심이 나를 버린 것인지 겸허하게 노력하면서 기다리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신호탄이라도 되는 듯 당내에서 ‘김종인 책임론’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차기 원내대표를 노리거나 당 대표를 노리는 사람들은 물론 앞으로 있을 재.보궐선거 출마를 희망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문재인 책임론’대신 ‘김종인 책임론’을 들고 나오고 있다.
당의 최대 주주인 문재인 전 대표의 지원이 필요한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종인 대표는 ‘문재인 일병구하기’의 희생양인 셈이다. 그러나 김 대표가 ‘토사구팽’당하는 것은 정치 생리상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자신이 문재인 전 대표를 위한 희생양이 되는 것마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까?
이른바 ‘셀프공천’논란이 일 때 ‘당부거부’라는 몽니로 자신의 뜻을 일부나마 관철시켰던 김 전 대표다. 그런 그가 이번엔 어떤 몽니로 위기를 돌파해 나갈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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