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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문종 국회의원 |
세월의 횡포가 철인처럼 강인하던 부모님을 간데없이 무기력하게 줄여놓았다.
그런 부모님 모습을 보며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는 말을 실감하는 요즈음이다.
추석 명절만 해도 어머니의 활약이 빠지니 영 맹탕이 되고 말았다.
남다른 존재감으로 명절 때 마다 집안 분위기를 주도하시던 어머니였다.
그런 분이 이번 추석엔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심약해져 있으니 심란하다.
거대한 산처럼 자식들을 압도하던 아버지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교육자, 정치인, 심지어 동네 씨름왕 타이틀로도 빛을 내시던 예전의 아버지가 아니다.
요즘 들어 부쩍 “내가 죽어도 네가 다 할 수 있겠지. 나는 점점 자신이 없어져"라고 하시는 말씀이 느신 것 같다.
자식 없이 홀로 고군분투 중인, 그래서 우리에게 더 애틋한 존재인 이모님도 마찬가지다.
몇 년 째 병원에 계시더니 서울여대 이사장, 전국여전도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하는 등 대한민국 대표 신여성의 표상으로 추앙받던 지난 삶이 무색할 정도로 많이 위축된 기색이다. 옆에서 아무리 “건강에만 유의하셔라. 우리가 잘 모시겠다”고 안심시켜도 혼자라는 외로움과 불안감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잔인한 세월의 상흔이다.
늘 위풍당당한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다가 졸지에 치매노인으로 몰린 해프닝도 따지고 보면 세월 탓이다.
적어도 어머니가 구순 넘은 노인이 아니었다면 간병인 아주머니의 상상력이 그 정도까지 일방적으로 치닫게 되지는 않았을 테니까.
어머니의 자식자랑이 화근이 됐다. 어머니를 잘 모르는 간병인 아주머니로서는 큰 아들은 4선 국회의원, 둘째는 대학원장, 딸은 대학총장 등 자식자랑에 이어 대학이사장을 지낸 친언니와 국회의원 남편 자랑에 여념이 없는 어머니의 상태가 영 미덥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큰 아들 후배인 이 병원 원장이 어머니 입원소식을 듣고 찾아왔다는 자랑까지 더해지자 간병인은 회진 온 의사에게 어머니의 정신 상태를 걱정했다.
이에 어머니가 당신의 결백(?)을 입증하고자 병원장을 불러달라고 하자 간병인의 오해는 더더욱 심화됐고 급기야 어머니는 ‘큰아들 호출’이라는 처방을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이상이, 평소 바쁜 아들한테 폐가 된다고 호출을 삼가는 어머니의 다급한 호출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가 파악한 ‘가슴 아픈’ 사건의 전말이다.
연륜이 더해질수록 삶의 마감에 근접해지는 부모님 모습을 통해 인생의 기승전결을 생각하게 된다.
특히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매듭져야 할 지, 마무리의 완성도를 위해 미리 고민할 기회를 갖게 되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 맥락으로 밤잠이 없어진 탓에 한밤중 호출이 잦아지신 아버지의 근황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아버지의 용건은 비교적 단순하다. 호출을 받는 즉시 달려가 아버지 말씀을 들어드리면 된다.
그런데 아버지가 근래 들어 부쩍 몇 가지 특정 추억(항일운동하다가 일경에 끌려가 대나무 꼬챙이로 손톱고문 당한 이야기, 9남매 중 유난히 사랑해주시던 선친에 대한 그리움, 월남 과정의 무용담, 학교 설립 당시 고생담 등)에 애착을 갖는 모습이다.
항일, 선친, 월남, 학교 등 4가지 키워드로 압축된 동일 추억을 반복해서 회고하는 패턴을 보이고 계신다.
어쩌면 삶의 마감을 앞둔 아버지가 자기 인생의 결정체를 특정하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연세가 94세다.
언젠가는 나도 부모님 길을 따르게 될 것이다.
버팀목이 되어줬던 부모가 한순간 자식에게 줄어든 몸피를 의탁하게 되는 순환 과정도 순응하면서 말이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생자필멸, 운명의 그 순간, 나는 과연 어떤 인생 스토리로 나를 대변하게 될 지 궁금하다.
지금은 알 도리가 없다.
다만 최상의 키워드로 생의 종말을 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만 할 수 있을 뿐.
지금까지 존경할 수 있는 삶의 그림으로 자식들을 이끌어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더불어 더 큰 간절함으로 부모님과 이모님의 무운장수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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