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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고도 못 이기면 아까 추미애 대표께서 한강에 빠져야한다고 했는데, 아마 제가 제일 먼저 빠져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는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내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내뱉은 말이다.
물론 더민주 추미애 대표가 "국민여론을 조사하면 60%가 정권교체를 해달라는 것"이라며 "60%의 지지를 받는데 우리가 지면 어떻게 되겠느냐. 우리가 다 한강에 빠져야 한다. 낯을 들고 다닐 수 없다"고 하자, 이에 호응 하면서 내년 대선에서 승리하겠다는 각오를 피력한 것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유력한 야권 대선주자가 할 말은 아니다. 더구나 지키지도 못할 말을 아무런 생각 없이 내뱉는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존재의 한없는 가벼움에 실소(失笑)가 터져 나올 지경이다.
사실 그는 지난 4.13총선 당시에도 허언(虛言)을 한 바 있다.
지난 4월 그는 호남지역에 만연한 '반문(反文)정서'를 달래기 위해 광주를 찾았고, 그곳에서 "(호남이)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둔다면 미련 없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고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떠했나.
더민주의 참패다. 호남의 심장부인 광주에선 8석 가운데 단 한 석도 얻지 못했으며, 전남에선 10석 가운데 겨우 한 석을 얻었을 뿐이다. 전북에서도 10석 중 고작 두석을 얻는데 그쳤다.
호남 28곳 가운데 더민주가 승리한 지역은 3곳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마땅히 자신이 공언한대로 대선불출마를 공개선언하고 정치일선에서 물러나는 게 도리일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실제 그는 "호남 민심이 나를 버린 것인지 더 겸허하게 노력하면서 기다리겠다"는 애매모호한 말 한마디만 던져 놓고는 오히려 대권을 향해 박차를 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그는 아직 더민주의 공식적인 대선후보도 아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부겸 의원,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등과 함께 예비후로 거론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친문이 장악하고 있는 당에서 진행되는 경선은 그 결과가 불 보듯 빤하겠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아주 대놓고 그들을 ‘들러리’로 격하시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실제 그는 "당내에는 대선에 나갈 정말 좋은 후보들이 많다"며 "후보들이 경쟁하면서도 협력해나간다면 대선에서 상대후보가 누가 되더라도 우리가 문제없이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놓고는 마치 자신이 더민주의 대선후보라도 되는 듯, "내년 대선에서 못 이기면 제가 제일 먼저 한강에 빠져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더 큰 문제는 그의 오만함이다.
자신이 어떻게 하든 국민은 결국 자신에게 표를 몰아줄 것이라는 오만함이 그의 존재를 한없이 가볍게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걱정이다.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MB(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어느 날 갑자기 혜성같이 등장해 그야말로 어떨결에 대통령이 된 사람이 국정운영을 할 경우, 국론이 분열되고 국민갈등이 심각해지는 등 상당한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국민은 이미 경험했다.
그래서 오피니언리더들이나 정치부 기자 등 전문가들은 YS(김영삼 전 대통령)나 DJ(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오랜 정치경륜을 지닌 지도자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적임자일까?
지난 2006년, 그러니까 MB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이전에 <미디어오늘>이 창간 11주년을 맞아 국회 출입기자 13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보면, 손학규 예비후가 고건 이명박 박근혜 등을 제치고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당시 설문에 참여한 기자들은 손학규 예비후보를 높게 평가한 이유로 파주 LCD 공장 유치 등 가시적인 성과를 보인 점,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합리적인 성품, 사회통합 능력 등을 꼽았다. 4선 국회의원에 경기도지사, 보건복지부 장관 등 풍부한 정치이력을 지닌 점도 강점이다. 그러다보니 그는 가볍게 처신하는 일이 없다. 발언도 매우 진중하다. 조만간 정계 복귀할 것으로 알려졌음에도 여전히 강진에 머물고 있는 것 역시 그의 진중함 때문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국민들은 그런 사실을 잘 모른다.
아마도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문재인 전 대표처럼 ‘정치 쇼’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 쇼’를 잘하는 지도자를 선택할 것인지, 국민주권시대를 열어갈 진중한 지도자를 선택할 것인지, 그것은 전적으로 유권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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