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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회·정치계 원로 22명이 2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초당적인 거국내각을 구성해 국가 비상사태를 극복하자’는 내용의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시국선언에는 박관용·김원기·임채정·김형오·정의화 등 16~19대 국회 여야 출신 국회의장, 이종찬 우당기념관 관장, 김덕룡(전 한나라당 원내대표) 국민동행 상임공동대표, 정운천 전 국무총리,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손봉호 나눔국민운동 이사장 등 정·관계 및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여기에 법륜 스님, 김명혁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목사, 박남수 한국종교연합 상임대표, 인명진 갈릴리교회 원로목사 등 종교계 인사들까지 가세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대통령의 지도력과 도덕성은 상실되고 국정운영의 신뢰와 정당성은 붕괴됐다”며 “박 대통령은 사적인 국정운영으로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가 기강을 무너뜨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초당적인 거국내각 구성을 위해 결단하고 모든 국정 운영을 거국내각에 맡겨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박 대통령 하야와 탄핵 등을 주장하는 야권에 대해선 “국정 공백을 초래하는 것은 국가의 불행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해 주길 바란다”며 자제를 호소했다.
역시 원로 분들이시라 생각이 깊고, 그에 따른 처방 역시 제대로 짚었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김병준 교수 총리 내정에 대한 야권 반발을 노무현 정부에 대한 반발로 치부하는 식의 엉뚱한 대응을 하고 있다.
실제 이 대표는 이날 “야당이 김병준 내정자를 반대한다면 그건 노무현 정부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이 김병준이가 됐든, 아니면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나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됐든, 그 누구라도 이번과 같은 절차와 방식으로 총리에 지명됐다면 그게 문제인 것이다.
박 대통령이 노무현정부 인사인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국무총리에 발탁하는 ‘결단’을 하고도 한층 사나워진 비판에 직면한 것은 ‘대통령의 불통’이라는 그 절차와 방식 때문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권한을 최대한 내려놓아야 한다는 민심을 무시한 채 여야와 전혀 협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개각을 발표한 것 아닌가. 심지어 새누리당 지도부에게조차 인선내용을 미리 알리지 않았다니 이런 ‘불통’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로 인해 ‘야당 성향 총리 인선’의 의미는 전혀 부각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총리 지명을 철회하거나 유보했어야 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불난 집에 부채질 하듯 3일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을 새로이 임명하고 말았다. 물론 한광옥 신임 비서실장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이자 호남출신으로 야권과도 비교적 교감이 이루어지는 인사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이번 난국을 돌파하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됐다.
첫 단추, 즉 총리 지명절차가 잘못됐는데 후속 조치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박 대통령 스스로 김병준 총리 지명을 철회하고 여야 3당 지도부와 만나 국회 차원에서 여야협의에 의해 총리 적임자를 지명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특히 ‘책임총리 임명과 거국중립내각 구성’ 등 국정 정상화를 위한 대통령 권한 분산 방안을 수용할 것인지 여부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고, 정국 주도권에 집착해서 거국중립내각 요구를 물리치고 개각으로 국면 전환을 시도하려 든다면 더욱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가뜩이나 박 대통령의 일방통행 개각에 자극 받은 야당들이 ‘개각 철회 요구ㆍ국회 인준 절차 거부’로 맞서면서 청와대는 더 심한 궁지에 몰리지 않았는가.
세간에는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에서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와 함께 했던 김병준 교수가 문 전 대표와 관련된 파일을 가장 많이 알고 있고, 그래서 문 전 대표 견제카드로 김 교수를 영입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이 김 교수의 총리 지명을 극렬하게 반대하는 것 역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당초 국민의당에서 그를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했던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란 소리도 들린다.
정말 그렇다면 그것은 더욱 큰 문제다.
거듭 말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국가를 위한 마지막 선택이 무엇인지 결단해 주기를 바란다. 아울러 김병준 총리 내정자는 박 대통령이 결단하지 못할 경우, 스스로 사임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명예를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이번 ‘최순실게이트’나 ‘기습내각’이 모두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감안해 정치권 차원에서 분권형 개헌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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