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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정치인들 가운데 제법 균형 있는 시각을 보였던 안희정 충남지사가 요즘 변한 것 같다.
마치 무엇엔가 홀린 듯 평정심을 잃어버린 것 같다. 낡은 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체제로 나아가자는 개혁의 목소리를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매도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실제 안 지사는 지난 6일 방송된 tbs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 개헌론에 대해 “촛불 민심을 왜곡하는 개헌”이라며 이같이 규정했다.
과연 그럴까?
물론 지금 국민의 명령은 자격 없는 박근혜 대통령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란 거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거기엔 ‘제2의 최순실’, ‘제2의 박근혜’가 나오지 않도록 잘못된 국가시스템을 바로 잡으라는 준엄한 명령이 포함돼 있다.
사실 지금처럼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6공화국 체제가 유지될 경우, 다음 정부에서도 ‘제2의 최순실’이라는 괴물이 탄생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필연이다. 실제로 6공화국체제가 출범한 이후 역대 모든 대통령들이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으로 홍역을 치르지 않았는가.
노태우정부에선 ‘6공 황태자’라는 박철언씨가 문제가 됐고, 김영삼정부에선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가 문제였다. 김대중정부에선 이른바 ‘홍삼트리오’라는 대통령의 아들 홍일·홍업·홍걸 삼형제가 모두 비리에 휘말렸다. 노무현정부에선 ‘봉하대군’으로 통하는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 씨가 문제였고, 이명박정부에선 ‘영일대군’이라 불리던 대통령의 친형이 이상득 씨가 문제였다. 즉 박근혜정부의 ‘최순실게이트’와 유사한 사례들이 6공화국체제의 역대 모든 정부에서 발생했다는 말이다.
따라서 국민은 대통령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제왕적대통령제’를 국민주권이 강화되는 권력 분산형으로 개헌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한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게 나왔다.
개헌시기에 대해 ‘대통령 선거 이전에 하는 것이 낫다’는 응답이 과반을 넘었다. 반면 ‘대통령 선거 이후에 하는 것이 낫다’는 응답은 30%대에서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촛불민심은 당장 개헌을 해서 박 대통령과 같은 ‘제왕적 대통령’이 나오는 것을 막아달라는 것이다.
개헌이 ‘촛불민심’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낡은 6공화국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내년 대선에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라 “이대로가 좋다”는 ‘호헌’ 주장이야말로 촛불민심을 왜곡하는 것 아니겠는가.
따라서 안 지사는 6공화국의 낡은 체제에서 기득권을 누려온 지역패권세력들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국민이 살기 좋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개헌논의를 시작하자고 말했어야 옳았다.
그런데, 왜 안 지사가 이처럼 평정심을 잃고, 반개혁집단인 ‘호헌파’의 입장을 두둔하고 나선 것일까?
그는 인터뷰 도중에 특별히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언급하며 날을 세웠다. 실제로 안 지사는 “우리당 대표도 했었던 분이 나가서 이렇게 당을 흔들면 되느냐”고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그러고 보니 그가 평정심을 잃고 반개혁적인 입장에 서게 된 까닭을 알 것 같다. 한마디로 그의 발언에서 ‘손학규 공포’가 엿보인다.
사실 그도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의 제왕적대통령제가 이번 사태를 일으킨 문제의 근원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명운을 다한 6공화국을 끝장내고 7공화국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제7공화국’이라는 용어는 이미 손 전 대표가 전남 강진에서 내려오면서 터트린 정계복귀 일성(一聲)이었다. 가장 개혁적인 편에 손 전 대표가 서 있는 형국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가 손 전 대표를 ‘제3지대론’ 인물로 규정한 것 역시 의도적으로 그를 깎아내리기 위함이다.
손 전 대표는 단 한 차례도 자신의 입으로 ‘제3지대’라는 말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그는 스스로를 ‘개혁지대’라고 표현했다.
손 전 대표는 나라를 망치는 낡은 시스템을 바꿔 국민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자고 했다. 이것이 왜 잘 못됐다는 것인가.
오히려 잘못은 6공화국에서 기득권을 누려온 집단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개헌을 반대하는 것 아니겠는가.
혹시라도 손학규 전 대표만 짓밟으면 자신이 ‘문재인 대체제’로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억지논리를 펼친 것이라면 정말 실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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