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손학규’를 부르지만...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16-12-27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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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전문가들은 대체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저평가 우량주’라고 평가한다.

아마도 정치지도자로서 우수한 능력과 자질을 갖추었음에도 낮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탓일 게다. 실제 지난해, 대한민국에서 소위 ‘내로라’하는 정치전문가 5인이 한 자리에 모여 차기 대권주자 10명의 리더십을 면밀히 분석하고 평가를 내린 일이 있었는데 당시 종합평가에서 손학규 전 대표가 당당하게 1위를 차지했다.

평가 대상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다툼을 벌이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유승민 의원,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등이었다. 이들을 대상으로 권력의지, 시대정신, 도덕성, 비전 제시, 추진력, 인사능력, 민주적 정책 결정, 커뮤니케이션(소통), 위기관리, 갈등조정(사회통합) 등 대권주자로서 필요한 덕목을 세밀하게 평가하고 점수를 매겼다.

그 결과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대권주자는 손학규 전 대표였다. 그는 총점 500점에서 379점을 받았다. 특히 ‘권력의지’나 ‘시대정신’ ‘도덕성’에서 50점 만점에서 40점대의 높은 평가를 이끌어냈으며, ‘위기관리’와 ‘갈등조정’ 역시 다른 대권주자들이 낮은 점수를 받은 데 비해 손 전 대표는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았다.

야권의 문재인 전 대표가 받은 총점 295점보다 84점이나 높은 점수이고, 안철수 전 전 대표의 254점보다는 무려 125점이나 높다. 문 전 대표나 안 전 대표가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이나 능력에 있어선 손 전 대표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각종 여론조사기관의 지지율조사에서 문재인 전 대표와 선두다툼을 벌이는 여권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93점으로 역시 손 전 대표의 적수가 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손 전 대표의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건 그들이 중앙정치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거나 세계무대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동안 전남 강진 토굴에서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그가 조금씩 빛을 발하고 있다.

잘 알다시피 10월 20일, 뒤늦게 정계에 복귀를 선언한 그의 정계복귀 일성(一聲)은 “제 7공화국”이었다. 사실 그 때만해도 해도 그의 주장은 다소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렸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나서 국민들은 제왕적대통령제인 6공화국의 낡은 시스템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9차 촛불집회 때까지 매번 등장했던 구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게 나라냐”라는 한탄이었다. 즉 잘못된 이 나라를 바로 잡아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해야 한다는 국민의 함성이 있었다는 말이다. 결국 “이대로가 좋다”며 완강히 개혁을 거부하던 문재인 전 대표 등 호헌파들도 국민의 개헌요구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여전히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개헌논의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지만, 국민의 시선이 두려워 드러내놓고 “호헌”을 주장하지 못하게 된 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만든 건 정당의 힘이 아니었다. 사실 손 전 대표는 마지막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는 당적까지 모두 내려놓고 혈혈단신으로 시베리아 벌판에 나선 사람이다. 아무런 조직도 없고 세력도 없는 그의 소리에 정치권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단지 귀만 기울이는 게 아니라 여야 가릴 것 없이 너도나도 앞 다퉈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실제로 27일 29명의 의원과 함께 새누리당을 탈당한 비박계 유승민 의원은 ‘개혁보수신당’ 창당을 공식 선언하면서 "손학규와도 연대할 수 있다"고 사실상 공개 구애에 나섰고, 이들보다 앞서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늘푸른한국당을 창당한 이재오 공동대표는 “우리 당 대선후보로 손학규 전 대표를 우선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야권의 한 축인 국민의당의 구애는 이들보다 더욱 적극적이다. 국민의당이 지난 23일 오전 의원총회에서 ‘즉각적인 개헌 추진’을 당론으로 채택한 것은 바로 손 전 대표를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지금 문재인 전 대표가 장악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에서도 한때는 그를 향한 구애가 끊이지 않았었다.

그가 지닌 잠재력이 결코 만만치 않은 탓일 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국민은 한동안 정치권을 떠나 있던 손 전 대표를 잘 모른다. 아무리 품질이 좋은 상품일지라도 소비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으면 구매할 수 없듯이, 우수한 자질과 능력을 지닌 정치지도자일지라도 국민이 모르면 표를 받을 수 없다. 이 현실적인 문제를 타개하지 못하면, 손 전 대표는 여전히 ‘저평가 우량주’로 남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한 손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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