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보다 개헌의지를 보라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17-01-08 12:5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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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4.19혁명을 군홧발로 짓밟고 시작한 박정희 체제는 재벌특혜와 정경유착, 반공이데올로기와 공안통치, 지역차별과 노동배제 등의 낡은 유산을 남겼다. 이 낡은 체제가 키운 부패권력의 종말이 바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였다. ‘박정희 시대’가 남긴 낡은 유산을 끝내고 새로운 시대, 새로운 대한민국을 여는 ‘시대의 마중물’을 내어야 한다.”

처음에는 이 말이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발언일 줄 알았다.

손 전 대표가 지난 해 10월 22일 정계복귀를 선언하면서 “제6공화국은 그 명운을 다했다. 이 (박정희 유산인 제왕적대통령)체제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더 이상 나라를 끌고 갈 수가 없다"며 "명운이 다한 제6공화국의 대통령이 되는 것은 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제 (국민주권시대인)제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국회에서 신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 말이었다. 참 가관이다.

손 전 대표가 5.16 쿠데타 세력은 4.19 혁명을 통해 이룩한 2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제왕적대통령체제를 만들었으며, 현재의 6공화국은 그 연장선인 만큼 개헌을 통해 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고 외칠 때, 추 대표는 그와 같이 개헌을 주장하는 인사들을 향해 “탄핵 정국에서 불난집에 군밤 구워먹겠다는 세력”이라고 규정하고 비판했던 사람이다. 오래 전 일도 아니고 불과 한 달 전의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손 전 대표와 똑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며칠 전만 해도 손 전 대표 등 개헌론자들을 향해 “개헌을 말씀하시는 분들의 정치적 계산이 제 눈에도 보인다”며 개헌론을 마치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으로 매도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헌법이 무슨 죄냐, 헌법도 피해자”라며 박정희 유산인 6공화국체제 수호의지를 피력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추미애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가 흡사 손학규 전 대표의 말을 녹음했다가 틀어 놓듯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이유가 대체 뭘까?

과연 그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일까?

아무래도 뭔가 찜찜하다.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이른바 ‘개헌저지보고서’라는 걸 작성 이후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연구원의 ‘개헌저지문건’엔 개헌 공약(公約)은 나중에 경제위기 등을 이유로 안 지켜도 되는 공약(空約)이 될 것이란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즉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 문제에 대해 줄곧 ‘경제블랙홀’이라며 개헌논의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면 된다는 조언인 것이다.

한마디로 개헌공약은 나중에 당선되면 지키지 않아도 되니까 일단 ‘개헌 대 호헌’으로 대결구도가 짜이지 않도록 개헌을 공약하라는 뜻이다. 그러니 문 전 대표의 개헌 공약은 ‘공약(空約)’을 위한 ‘공약(公約)’에 불과한 것이란 합리적 의심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부디 문 전 대표의 개헌 약속이 진정성이 있는 것이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굳이 개헌을 2018년 지방선거 때까지 늦출 이유가 없다.

최고의 개혁은 개헌이다. 개헌 없는 개혁은 거짓이고 위선이다. 국민은 하루빨리 박정희 유산인 6공화국체제를 끝장내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지금 너무나 살기 어렵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국민들의 이런 호소를 외면하고, 국민에게 고통의 기간을 2018년 지방선거 때까지 더 연장하자고 제안하면서, 그 때까지 인내하라는 게 과연 정치지도자가 할 수 있는 말인지 묻고 싶다.

제발 부탁이다. 국민은 누가 다음 대통령에 당선 되느냐 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이런 체제 하에선 누가 대통령이 되든 ‘제2의 최순실’, ‘제2의 박근혜’ 탄생은 불가피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확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선이후 세상이 바뀌느냐의 여부다.

그동안 호헌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형식상 나중에 개헌논의에 동참하더라도 그들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구세력인 까닭에 그들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세상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일 것이다.

반면 시종일관 개헌을 주장했던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세상, 즉 저녁이 있는 살맛나는 세상이 열릴 것이다.

그 선택은 전적으로 유권자의 손에 달렸다. 지지율이 조금 앞선다는 이유로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었던 지난 대선의 과오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지지율보다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는 의지가 강한 정치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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