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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예일 대학 폴 케네디 교수는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던 한국이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을 시작으로 불과 20년 만에 세계적인 무역국가가 된 것을 경이롭게 본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정작 대한민국에서는 그에 대한 평가가 그다지 좋은 편만은 아니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에 이르게 한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 이른바 ‘최순실게이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실 그게 부정평가 이유의 전부라면 ‘딸을 잘못 낳은 죄’치고는 너무나 가혹하지 않겠는가.
거기엔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체 그게 뭘까?
바로 ‘유신헌법’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겐 ‘유신헌법 제정’이라는 씻을 수 없는 과오가 있다. 유신헌법은 1972년 10월 17일에 선포된 유신체제하에서 그해 11월 21일 국민투표로 확정된 헌법이다.
그런데 그 유신헌법을 만든 근간은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의 3선을 목적으로 추진되었던 제6차 개헌이다. 이른바 ‘3선 개헌’이라 불리는 이 개헌안의 주요 내용은 대통령의 3선 연임을 허용하고,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결의의 요건을 강화하는 한편, 국회의원의 행정부 장 ·차관의 겸직을 허용하는 것 등이다. 지금의 6공화국 체제는 사실상 그 때 만들어진 셈이다.
아무튼 이 개헌으로 박정희는 1971년 4월 제7대 대통령선거에 민주공화당 후보로 다시 출마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고, 또 당선됨으로써 1972년 이후 유신체제와 함께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정계복귀를 선언하면서 “제6공화국은 그 명운을 다했다. 이 체제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더 이상 나라를 끌고 갈 수가 없다"며 "명운이 다한 제6공화국의 대통령이 되는 것은 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제 제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바로 ‘박정희 시대의 유산’인 낡은 6공화국체제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그는 4.19혁명을 군홧발로 짓밟고 시작한 박정희식의 제왕적대통령제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대통령은 물론 국민까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손 전 대표가 주창하는 7공화국은 대통령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을 막고, 국가의 주인인 국민에게 주권을 돌려주는 ‘권력 분산형 공화국’이다.
그런데 이를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
바로 6공화국체제에서 친박패권세력과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해온 친문패권세력이다. 실제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 등 호헌파들은 개헌논의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개헌파들을 ‘이합집산 세력’으로 매도하는가하면, 특히 7공화국 깃발을 치켜 든 손학규 전 대표를 향해 독설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거짓은 결코 진실을 이길 수 없다. 제1당을 장악한 문재인 전 대표가 20%안팎의 콘크리트 같은 지지층이 있음에도 이제 겨우 5% 안팎의 지지를 받는 손 전 대표에게 명분 싸움에서 밀리는 것은 ‘문재인은 거짓’이고 ‘손학규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실제 ‘문재인 대세론’에서 이제는 ‘개헌 대세론’으로 힘의 균형추가 완전히 기울어져 버린 모양새다. 그동안 개헌에 미온적이던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물론,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부겸 의원 등도 개헌론에 힘을 싣고 있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 개헌특위 위원인 변재일 의원 같은 경우는 대선 전에 ‘원포인트 개헌’이라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자 다급해진 호헌파가 자신들도 개헌을 주장하는 개헌파라는 논리를 펴기 위해 ‘대통령 중심 4년 중임제’ 카드를 꺼내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황당한 소리가 들린다.
정말 국민을 허깨비로 보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짓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 국민의 요구는 박정희가 4.19체제를 무너뜨리고 세운 제왕적대통령체제를 끝장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4년 중임제는 그런 제왕적대통령을 한 번 더 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이는 1969년 대통령을 한 번 더 하고 싶다는 욕심에서 ‘3선 개헌’을 했던 박정희의 권력욕을 빼다 박은 듯 닮았다는 점에서 너무나 섬뜩한 느낌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4년 중임제’는 박정희의 ‘3선 개헌’이자 ‘제2의 유신헌법’으로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 방향이다. 그것은 대한민국 헌정사에 또 다른 오점을 남기는 행위로 비난 받아 마땅하다. 만일 제왕적 대통령이 되겠다는 욕심에서 ‘제2의 3선 개헌’이나 다를 바 없는 ‘4년 중임제’ 개헌을 시도할 경우, 광장을 메운 촛불의 분노가 박근혜에게서 문재인에게로 향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나저나 문재인의 모습에서 노무현이 아니라 박정희가 오버랩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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