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이 꿈꾸는 ‘제2 유신헌법’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17-01-11 1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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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더불어민주당 정책연구원인 민주연구원이 내놓은 ‘개헌논의 배경과 전략적 스탠스 & 더불어민주당의 선택’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섬뜩한 내용들이 참으로 많다.

현재 민주당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이 친문패권주의 세력이고, 민주연구원의 실세인 원장과 부원장 모두 친문 인사라는 점에서 이 보고서는 사실상 ‘문재인에 의한 문재인을 위한 보고서’인 셈이다.

실제로 보고서의 모든 내용은 아직 당내 대선주자 경선도 치르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문재인 전 대표의 대선 본선 진출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한마디로 문 전 대표를 제외한 다른 대선주자들은 모두 문 전 대표의 경선 승리를 위한 ‘들러리’이거나 아니면 ‘페이스메이커’ 쯤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전문가들 생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친문계가 당을 틀어쥐고 있는 불공정한 상황에서 이재명, 박원순, 김부겸, 안희정 등 다른 주자들이 경선에서 승리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설사 경선과정에서 ‘문재인이 당 후보가 되면 본선에서 패배한다.’는 뚜렷한 징후가 나타나더라도 그로 인해 경선결과가 뒤집어지거나 후보가 바뀌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따라서 그 보고서가 ‘문재인에 의한 문재인을 위한 보고서’라는 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물론 다른 경선주자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측면에서는 문제가 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당내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헌을 매개로 한 제3지대 결집을 우려하면서 개헌파들을 “야합세력으로 몰아붙여야 한다”고 주문한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이는 문재인의 승리를 위해 국민을 눈속임하라는 뜻인 까닭이다.

이른바 ‘문재인 호위무사’라고 불리는 안희정 충남지사가 대표적 개헌론자인 손학규 전 대표를 향해 연일 독설을 쏟아낸 것도 결국은 보고서의 지시대로 사실을 호도하기 위한 방편일 것이다. 실제 안희정 지사는 손 전 대표를 향해 동지가 어떻게 수시로 바뀌느냐며 아예 정계은퇴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이번 대선이 ‘호헌 수구파’ 대 ‘개헌 개혁파’의 구도로 짜일 경우 호헌파 문재인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개헌파 손학규를 흠집 내기 위함이다. 그런 면에서 안 지사는 ‘문재인에 의한 문재인을 위한 보고서’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 충복인 셈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보고서의 주된 내용이 ‘개헌 저지’라는 점이다.

이는 국민을 속이는 차원을 넘어 아예 국민의 뜻을 꺾어버리겠다는 뜻 아니겠는가.

지금 ‘최순실게이트’에 분노한 국민은 “이게 나라냐”는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서고 있는 마당이다. 대통령이 제왕처럼 군림하는 6공화국 체제를 끝장내고 나라의 근본 틀을 바꿔 새로운 세상을 열어 달라는 시위인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감히 이런 국민의 요구인 개헌을 저지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가.

특히 이원집정부제 또는 내각제 개헌을 완전히 배제한 것도 문제다.

실제 ‘개헌 저지보고서’에는 4년 중임제에 긍정적이거나 비슷한 견해를 가진 의원을 국회 개헌특위에 다수 참여하게 해야 한다는 지침이 담겨 있다.

문재인 전 대표와 그의 호위무사 격인 안희정 지사를 제외한 당내 다른 주자들 대부분이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를 주장하는데 보고서는 ‘4년 중임제’를 적극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알다시피 문 전 대표는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4년 중임제 개헌을 공약한 바 있다. 결국 문 전 대표는 분권형 개헌을 저지하기 위해 손학규 전 대표 등 개헌파를 “야합세력”으로 규정, 국민을 속이고 난 후에 자신이 제왕적대통령을 한 번 다기 위해 4년 중임제 개헌을 하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이 얼마나 섬뜩한 발상인가.

특히 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9년 자신이 대통령을 한 번 더 하기 위해 ‘3선 개현’을 했던 것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점에서 소름이 돋는다. 실제로 그는 지난해 12월 29일 고(故) 김근태 전 상임고문의 5주기 추모식에서 “5년 임기도 짧다”며 제왕적대통령제를 한 번 더 하는 개헌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문 전 대표가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2018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함께 실시하자”고 제안한 것은 아마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일 게다.

즉 개정 헌법 부칙에 당해 대통령은 차기 1회에 한해 도전을 허용한다는 규정을 넣는 방식으로 자신이 한 번 더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제왕적대통령을 해먹겠다는 욕심에서 그런 제안을 했을 것이란 뜻이다.

하지만 아무리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대권후보주자라고 하지만, 과연 국민의 뜻을 꺾고 ‘제2의 유신헌법’이라는 비난을 받는 ‘4년 중임제’ 개헌을 실현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비록 지금 당장은 호헌파들의 ‘눈속임’ 전략 때문에 개헌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하는 국민들도 언젠가는 그 실체를 알게 될 것이고, 그러면 박근혜를 향했던 촛불시위가 문재인 쪽으로 방향을 트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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