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심판, ‘신속’이냐 ‘정확’이냐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17-01-25 14:26:51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편집국장 고하승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기 전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 사건을 선고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박 소장은 25일 열리는 탄핵심판 사건 9차 변론기일을 시작하며 "헌재 구성에 더 이상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늦어도 3월 13일까지는 최종 결정이 선고돼야 한다"고 말했다.

헌재의 결정은 9인의 재판관으로 결정되는 재판부에서 치열한 논의를 거쳐서 도출되는 것이어서 재판관 각자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재판관 1인이 추가 공석이 되는 경우 이는 단지 한 사람의 공백을 넘어 심판결과를 왜곡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이달 31일을 끝으로 임기를 마치는 박 소장에 이어 3월13일 임기를 마치는 이정미 재판관마저 헌재를 떠나면 7명의 재판관이 심판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그래서 그 이전에 탄핵심판을 종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 측 이중환 변호사는 “박 소장의 말이 국회 측 권성동 소추위원이 언론에 말한 '3월 선고' 발언과 유사하다”며 "헌재가 국회 측 의견을 그대로 말한 것이라면 심판 절차에 공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자 박 소장이 "그런 얘기는 이 자리에서 용납할 수 없다"며 "헌재가 국회와 물밑에서 의사소통 가진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재판부에 대한 모독이다. 그런 근거 없는 이야기를 어떻게 하느냐"고 호통 쳤다고 한다.

일단 이중환 변호사와 박 소장의 공방전만 놓고 본다면 박 소장의 발언에 대해 ‘공정성’을 의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박 소장은 이런 상황에 처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은 여야 정치권의 무능함을 질타하며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한 까닭이다.

특히 박 소장은 "탄핵심판 절차 중 공석 상태가 이미 기정사실이 되는 이런 사실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헌재소장, 재판관 공석이라는 헌법적 비상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향후 헌법 개정 등 입법적 조치가 반드시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헌재 재판관으로서의 그의 진정성은 믿어도 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7명이 재판하는 상황’을 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정확한 심판’이다.

탄핵 심판은 재판관 개인에게 있어선 개인의 명예가 달린 것이고, 국가에 있어선 그것이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게 될 것이고,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대통령 탄핵의 잣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재판관 개개인이 탄핵여부에 대해 분명한 판단을 내릴 만한 근거가 갖춰질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는 게 맞다. 만약 헌재가 대통령에 대해 탄핵 결정을 내렸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일반 형사소송에서 무죄판결이 나온다면, 재판관들이 무슨 낯으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는가.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헌재가 탄핵소추를 기각했는데 박 대통령에 대해 나중에 유죄판결이 나오면 어찌하겠는가.

아마도 두고두고 쌓아온 재판관으로서의 명예가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헌재 소장이라고 하더라도 재판관들에게 그런 위험을 감수하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특히 여전히 이런저런 논란거리가 있는 상황에서 헌재가 시간에 쫓겨 진실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개연성이 단 1%라도 있다면, ‘정확’을 위해 ‘신속’을 유보하는 게 맞다.

법을 잘 모르는 일반인의 상식에 비춰볼 때에도 그렇다.

물론 정치권은 조급할 것이다.

박 소장이 제시한대로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 시한을 3월 13일 이전으로 못 박을 경우, 차기 대선 일정도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탄핵이 인용되면 대통령이 궐위 또는 자격 상실한 때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하도록 규정한 헌법 제68조 제2항에 따라 60일 이내에 대선이 치러진다. 4월 말에서 5월 초 이른바 '벚꽃 대선'이 현실화하는 셈이다.

반대로 헌재가 탄핵소추를 기각할 경우 박 대통령은 즉시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정치권의 차기 대권 경쟁은 기존 12월 대선 일정에 맞춰 진행된다.

정치권이 헌재를 향해 이런저런 압박을 가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헌재는 정치권의 이런저런 소리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 재판관의 양심에 따라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정확하게 판단할 책무가 있는 탓이다.

거듭 말하지만 헌재 결정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신속’이 아니라 ‘정확’이다. 그런 면에서 박 소장이 탄핵심판 결정을 3월 13일 이전으로 못 박은 것은 조금 성급했다는 판단이다. 다만 박 대통령의 뇌물죄 혐의 등에 대해 1심 재판 결과라도 나온다면 그를 판단근거로 ‘신속’을 기하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고하승 고하승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