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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선 룰’ 합의가 안 되면 국민의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고 박지원 대표에게 이미 통보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발언이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아 정치인들 사이에서 ‘선비’라고 불리는 손 전 대표가 단단히 화가 난 것이다.
그는 “당을 나올 수 있다는 말이냐”는 질문엔 “그런 생각을 지금 할 것은 없고…”라고 답변했지만, 사실상 탈당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체, 그는 왜 이처럼 불같이 화를 낸 것일까?
온갖 편법과 꼼수가 난무하는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전남 강진에서 내려와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국민의당을 선택했는데 안철수 전 대표가 ‘경선룰’ 협상과정에서 선거의 ‘원칙’을 훼손하는 ‘반칙’경선을 하자고 주장하니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손 전 대표는 경선룰을 제정하는 데 각 후보가 서로 유.불리를 따지다보면 ‘모바일투표’나 ‘전화조사’와 같은 별별 해괴망측한 편법이 등장하기 때문에 선거의 기본 원칙을 지켜 ‘직접 현장투표’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것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선거의 4원칙’이 준수되는 투표의 기본원칙이기도 하다.
그런데 안철수 전 대표는 투표대신에 전화조사로 대통령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는 기존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러면 전화로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게 과연 합당한 것인가?
현재 매주 주요 언론들과 여론조사 업체들이 대선주자 및 정당에 대한 선호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특히 많은 언론이 인용하는 여론조사 업체인 리얼미터는 매주 정기적으로 대선후보와 정당들에 대한 여론조사를 시행한다. 그런데 리얼미터의 최근 5주간 진행된 여론조사의 전체 응답률은 10%도 안 됐다. 즉 90% 이상이 여론조사를 기피하는 ‘침묵 유권자’라는 뜻이다.
실제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공개된 자료를 토대로 응답률을 확인한 결과, 2월 전체와 3월 첫 주 조사에서 응답률이 단 한 차례도 두 자릿수를 넘지 못했다. 최근 5주간 평균 응답률은 7.42%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는 94% 이상의 유권자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셈이다.
이 업체의 여론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3%p. 수준이지만 이 수치가 여론조사 결과의 신뢰도를 담보하지 못한다. 응답하지 않은 사람의 의중은 전혀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가 정확한 민심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제기가 나오는 이유인 것이다.
정확한 민심을 반영하는 여론조사가 이뤄지려면 최소한 응답률이 50% 이상은 돼야 하는데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바로 그런 방식, 즉 ‘원칙’이 아닌 ‘반칙’으로 대통령 후보를 뽑자고 어깃장을 부리니 ‘선비’ 손학규로서도 더 이상은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손 전 대표는 비록 경선에 참여하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원칙’을 굽히면서까지 ‘반칙 경선룰’을 수용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런 결의에 박수를 보내는 바다. 만일 국민의당이 ‘안철수의 사당(私黨)’이라면 굳이 그런 정당에서 경선을 벌일 이유도 없고, 더 이상 몸을 담을 이유도 없다. 그것은 더불어민주당이 ‘친문패권정당’인 것처럼 국민의당이 ‘친안패권정당’임을 입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손 전 대표 입장에서 볼 때, 더불어민주당 탈당을 공식화한 김종인 전 대표와 손을 잡고 새로운 ‘빅텐트’를 치는 게 훨씬 더 유리할 것이다.
김 전 대표 역시 그렇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손 전 대표는 마지막까지 미련하게(?) 국민의당에서 경선룰 협상을 지켜볼 것이다. 그게 ‘원칙’이라는 자신의 정치 철학 때문이다. 아마도 손 전 대표에게 있어서 여론조사 반영은 비율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건 ‘원칙’이 아니고 ‘반칙’이기 때문에 단 1%도 반영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일 것이다. 그런 손학규 전 대표에게 ‘반칙 경선룰’을 만들자는 안철수 전 대표의 제안은 옳지 않다.
이제 선택은 안철수에게 달렸다. 안 전 대표가 ‘원칙’을 따르든지 아니면 경선을 파국으로 몰고 가 국민의 냉소를 받으며 후보로 추대되든지 둘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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