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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이 결국 ‘호남’이라는 딜레마를 극복하지 못해 깊은 수렁에 빠진 형국이다.
국민의당 소속 동교동계 원로 그룹이 정대철 상임고문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하라는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집단적으로 탈당, 더불어민주당에 합류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실제 동교동계 원로그룹의 이훈평 전 의원은 23일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고문단 23명이 어제(22일) 모여 ‘정 고문의 비대위원장 추대’와 ‘바른정당과의 통합 불가’ 등 두 가지 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탈당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원로들 의견이 상당히 강경한데 지도부는 심각성을 오해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당에 최후통첩을 한 셈이다.
아마도 이들 동교동계 원로그룹은 정대철 상임고문이 비대위원장을 맡게 되면 곧바로 민주당과 통합작업을 추진하려 들 것이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대선 이후 문재인 대통령과 가까운 김원기 전 국회의장, 추미애 민주당 대표 측근인 김민석 민주연구원장 등과 만나 합당 문제 등을 논의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훈평 전 의원도 굳이 이런 사실을 숨기려 들지 않았다.
실제 그는 "민주당과의 합당 등을 논의하기 위해서라도 정 고문이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또 다른 동교동계 관계자는 "호남 민심이 다시 민주당과 합치라고 한다"며 "우리가 민주당 반대편에 서면 호남이 용납하지 않을 분위기"라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요구는 이런 것이다.
“민주당과 합당을 논의하기 위해 정대철 고문을 비상대책위원장에 추대하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탈당한다.”
한마디로 ‘탈당’을 무기로 ‘비대위원장직을 달라’며 노골적인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현역 의원들도 내심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국민의당 지지율은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는 탓이다. 실제 당 지지율은 최근 한 자릿수로 추락하며 창당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호남 지지율 하락이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16∼18일 전국 19세 이상 1004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 포인트) 국민의당 지지율은 8%였다. 그런데 국민의당의 광주·전라 지역 지지율은 5%로 전국 평균보다도 뒤졌다.
이런 상황에서 금배지들이 다음 총선을 위해 어떻게든 민주당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면 지난 총선에서,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당과 안철수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은 어찌하란 말인가.
거대한 양당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는 게 작금의 정치 현실이다. 유권자들은 그 공생관계를 끊어내라며 국민의당과 안철 후보에게 아낌없는 지지를 보냈던 것이다. 즉 힘 있는 ‘제3당’이 되어 양당 패권세력을 적절히 견제하고, 정치개혁을 주도해 나가라는 국민적 요구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호남에서 패배했다는 이유로 다시 양당체제로 돌아가자니 어디 말이나 될법한 일인가.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이 위기가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이번에 그들 원로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그래서 그들이 스스로 탈당하게 되면, 구태 세력을 한꺼번에 대청소하는 반사이익을 얻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당시 자유한국당 복당파들이 바른정당을 탈당하자 오히려 유승민 후보의 지지율이 올라갔던 사례도 있지 않는가.
이제 국민의당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운명이 달렸다.
‘호남’을 기반으로 ‘비대위원장’ 직을 내 놓으라고 협박하는 동교동계 원로들의 요구에 굴복하느냐, 아니면 이번 기회에 ‘호남’이라는 지역적 울타리를 뛰어 넘어 전국정당으로 나아가기 위해 그들의 압력을 뿌리치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호남은 국민의당을 탄생시킨 어머니의 품과도 같은 지역이었지만, 결국 그런 호남이 족쇄가 되어 버렸던 이번 대선의 교훈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바른정당과의 통합이 ‘호남딜레마’를 극복하고 ‘전국정당’으로 나아가는 확실한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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